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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어원
ᐥ고구려는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ᐥ
 
-0108 樂浪
낙랑은 기원전 108년에서 기원후 313년까지 400여년간 대동강 유역에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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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樂浪, 帶方 그리고 朝鮮의 교치
기원전 108년에 대동강 유역에 설치된 낙랑군은 서진 때까지 존속하다 313년에 고려에 병합되었다. 그러자 모용 선비가 그 유민을 받아 자신의 영토 내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모용 선비의 연나라를 흡수한 북위 때에는 낙랑군이 요서의 영주에 있었는데 다시 하북의 남영주로 옮겨졌다. 대방은 낙랑과 이동 경로가 같고 조선은 북위 때 산해관 서쪽에 있었다. 313년 이후 옮겨간 낙랑, 대방 그리고 조선의 위치를 가지고 처음 설치된 위치라 주장하는 오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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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遼西와 (右)北平의 변천
❶ (漢書 14) 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書 5) 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書 3) 陽樂 肥如 海陽 ➔ (魏書 3) 肥如 陽樂 海陽 ❷ (漢書 16) 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書 4) 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書 4) 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書 2) 朝鮮 新昌 ❶+❷ 新昌 肥如 ➔ 新昌 ➔ 盧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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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城, 新昌그리고 碣石의 중복과 변천
신창, 수성 그리고 갈석은 모두 두 곳 이상의 지명에 사용되었다. 신창은 전한 시기에 요동군에도 있었고 탁군에도 있었다. 수성도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낙랑군에 있던 현이고 또 하나는 전국 시대에 무수였던 곳이 북신성과 신창을 거쳐 수성으로 개명된 곳이다. 갈석은 세 곳 있었는데, 선진 시기에는 구문에 있었고 그 이후에는 난하에 있었으며 수성에 있었다고 알려진 것은 착오로 만들어진 것으로 실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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