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0918 왕씨고려 > (2) 궁예

견훤百濟가 세워진 이듬해에 버림받은 신라왕자 궁예는 “지난날 新羅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髙麗를 깨뜨렸다. 내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며 髙麗를 세웠다. 궁예가 新羅 및 견훤百濟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髙麗계승만한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1145 三國史記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또는 48대 경문왕 응렴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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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0900
遂自稱後百濟王 設官分職 是唐光化三秊 新羅孝恭王四秊也 후백제 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나라 광화 3년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14891
 
1145 三國史記 0901
天復元秊辛酉 善宗自稱王 천복 원년 신유에 선종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다. 사람들에게 “지난날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깨뜨렸다. 그런 까닭에 평양 옛 도읍은 무성한 잡초로 꽉 차 있다. 내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것을 원망하였으므로 이런 말을 한 듯하다. 일찍이 남쪽으로 순행하여 흥주 부석사에 이르러 벽에 그려진 신라 왕의 초상을 보고 칼을 뽑아 그것을 쳤다. 그 칼 자욱이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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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辛酉称髙䴡 신유년에 (궁예는) 고려를 칭하였다. ▐ 삼국사기(1145)는 견훤에 대해서 自稱後百濟王(후백제왕을 칭했다)고 하면서 궁예에 대해서는 自稱王(왕을 칭했다)고만 해 놓았다. 삼국유사(1281)에는 궁예가 称髙䴡(고려를 칭했다)고 되어 있어 삼국사기가 의도적으로 高麗란 명칭을 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高句麗라 되어 있는 명칭을 대부분 高麗로 표기하고 있다.
14889
 
고구려의 어원
ᐥ고구려는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ᐥ
 
궁예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헌안왕이라고도 하고 경문왕이라고도 하는데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궁예의 어머니는 이름 모를 궁녀였는데 궁예는 단오 날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날 때부터 이가 나고 이상한 빛까지 나타났으므로 왕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라 명했다. 그러나 바닥에 던져진 그를 마침 밑에 있던 유모가 받아내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애꾸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유모에 의해 길러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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