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주 무제가 군사를 내어 遼東을 정벌하고자 하였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이산의 벌판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은 선봉이 되었는데 힘을 다해 싸워서 참수한 것이 수십 급이었다. 여러 군사들이 이긴 틈을 타서 맹렬히 공격해서 크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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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7 주서(636)
璉五世孫成大統十二年遣使獻其方物成死子湯立建徳六年湯又遣使來貢高祖拜湯為上開府儀同大將軍遼東郡開國公遼東王
연(장수왕)의 5세손 성(양원왕)이 546년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성이 죽고 아들 탕이 즉위하였다.
577년에 탕이 또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바쳤다. 고조가 탕을 상개부의동대장군 요동군개국공 요동왕에 배제했다.
❸ 낙랑고려와의 충돌 기록은 없다.
17702#17714
SIBLINGS
CHILDREN
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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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三國史記)
時後周武帝出師 伐遼東
王領軍 逆戰扵拜山之野 温逹爲先鋒 疾闘斬數十餘級 諸軍乗勝□撃 大克
▐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① 요동을 낙랑고려로만 해석할 수 없고 ② 당시의 정황과 어울리지 않으며 ③ 교차검증할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 북주의 무제는 575년 말에 북제 정벌에 나서 577년에 완성했다. 그러자 같은 해에 토욕혼, 백제, 고려 등으로부터 조공이 왔고 무제는 그들을 책봉했다. 북주와 고려가 전투를 치르는 일은 없었던 듯하다.
17702#16939
SIB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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