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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02 王高 禑王 表 1258 ②
1258년에 이르러 몽골의 산길대왕·보지관인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정복하던 때에, 본국의 정주의 반란민인 탁청, 용진현 사람인 조휘가 화주 이북 지방을 가지고 나아가 항복하였습니다. 금의 요동 함주로 부근의 심주에 쌍성현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본국의 함주 근처 화주의 작은 옛 성 2개를 모호하게 주청하여, 마침내 화주를 가지고 쌍성이라고 모칭하고 조휘를 쌍성총관으로, 탁청을 천호로 삼아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17232#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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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02 王高 禑王 表 1258 ③
▐ 우왕의 주장을 요약하면, 천산산맥 북쪽에 금나라의 咸州가 있었는데 철령 이북에 있는 咸州를 이와 혼동하여 원나라가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켰다는 이야기다. 몽골은 1234년에 북경에 있던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산길 대왕이 이끄는 군대가 만주의 여진을 평정하였는데, 이 군대가 철령 이북까지 내려와 1258년에 쌍성부를 설치한 것이다. 당시 왕씨 조정은 1232년에 강화도로 들어간 뒤 1270년까지 육지로 나오지 않았다.
17232#1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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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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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02 王高 禑王 表
鐵嶺之山距王京 僅三百里 公嶮之鎭 限邊界 非一二年
철령의 산은 왕경으로부터 거리가 겨우 300리이며, 공험진을 변방의 경계로 삼은 것은 1, 2년이 아닙니다.
▐ 개경에서 금강산 인근의 철령까지는 300리쯤 되고 봉집까지는 1000리쯤 된다. 따라서 우왕이 말하는 철령은 금강산 인근에 있는 고개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17232#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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