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국사책을 찢어라! > 관제역사가 숨기는 사실
 
건국전후의 민중학살
1949년 6월 5일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사상개조를 위해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었는데 1950년 초에는 가입자 수가 30만여 명에 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두려워한 육군특무대와 헌병이 이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여기에는 경찰과 정치폭력단까지 가담하였는데 국군의 퇴로와 인민군에 점령되지 않은 영남 지방에서 특히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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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일 관계
독널무덤과 전방후원분은 고대 일본의 보편적인 무덤양식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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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구역의 고고학적 양상
평양 낙랑구역에서 한나라의 무덤이 많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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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설화 해체
단군설화는 인도의 불교, 중국의 도교와 역사기록, 퉁구스의 설화 등이 섞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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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무덤방그림 분포
중국 전한(前漢) 시기 본격적으로 시작된 표실 벽화는 수도인 낙양과 서안 중심에서 점차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한(漢)의 묘실 벽화는 국력의 쇠락과 5호16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위력을 잃게 되고, 고구려를 비롯한 중국 북방 민족들에 주도권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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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 각 국의 위치 비정
일본서기를 토대로 복원해 본 임나 각 국의 위치. 삼국사기에는 이 지역에 대한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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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분 분포
큰독널무덤과 전방후원분은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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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장성과 한사군의 위치
한나라가 설치한 4군은 낙랑, 진번, 임둔 그리고 현도다. 진번, 임둔 그리고 현도는 나중에 각각 대방, 예 그리고 옥저로 변했다. 물론 이와 같은 재구성이 사서의 기록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이나 요서로 옮겨 보면 사서의 기록과 99% 어긋난다. 이것은 알비뇨 까마귀를 가지고 까마귀의 색은 희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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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개념도
한국통일 이전의 한반도 주민들은 하나의 민족이 아니었다. 여러 종족이 섞여 살고 있는, 오늘날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유사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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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일 이후 신라의 영토 확장
고려가 망하고 평양에 설치했던 당나라의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옮겨갈 때 신라의 북쪽 경계는 고려와 맞대고 있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점차 북쪽으로 영역을 넓혀가 대동강에 이르게 된 것은 100여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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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일의 성격
지도의 첫 번째는 백제가 한성에 있을 때고 두 번째는 고려가 한성을 차지했을 때며 세 번째는 신라가 한성을 차지했을 때다. 마지막은 한국통일 이후의 신라 행정구역이다. 한국통일에서 고려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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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과 대선릉
같은 축척으로 비교해 본 황남대총과 대선릉의 위성사진. 황남대총은 신라에서 가장 큰 고분이고 대선릉은 일본에서 가장 큰 전방후원분이다.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의 규모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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