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publications > YouTube > 1010 女眞 > 1404 公嶮鎭의 변질 과정
 
...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1108 公嶮鎭은 지금의 吉州
22692#26132 SBLNGS CHLDRN 26132
 
1404 공험진의 변질 과정 ⪢⪢
2026.05.21
22692#34682 SBLNGS CHLDRN 34682
 
2019.06.28 역사학자 이익주가 놓친 사료비판
역사학자 이익주는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두만강변의 공주를 근거로 윤관이 차지한 지역이 두만강 너머까지였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주는 고려사 세가와 열전 그리고 우왕의 표문까지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곳으로 태종의 진서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에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고려사의 기록은 모두 왕씨고려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리지에는 고려사를 편찬할 당시의 인식이 들어갔을 가능성을 놓친 것이죠.
22692#34024 SBLNGS CHLDRN 34024
 
image
22692#32898 SBLNGS CHLDRN 32898
 
reference
22692#32887 SBLNGS CHLDRN 32887
 
script
왕씨고려의 기록을 편집한 고려사 세가와 열전에는 윤관이 옛 옥저의 후손들을 내쫓고 차지한 지역이 咸州, 英州, 福州, 雄州, 吉州, 公嶮鎭 등이며 그 끝은 公嶮鎭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왕고의 우왕이 명나라에 보낸 표문과도 어긋나지 않죠. 이 이야기에 의하면 公嶮鎭의 위치로는 지금의 吉州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태종이 명나라에 보낸 진서에는 이전에 없던 孔州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孔州는 두만강변에 있었으므로 경계였던 公嶮鎭은 자연히 ...
22692#32888 SBLNGS CHLDRN 32888
 
youtube
22692#34681 SBLNGS CHLDRN 34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