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108 낙랑 > 유물/유적
 
樂浪 金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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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사전 - 벽돌무덤
벽돌무덤은 한(漢)나라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낙랑과 대방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백제의 송산리 벽돌무덤 2기는 양(梁)나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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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의 문화
이들의 문화와 생활상은 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로써 잘 알려져 있다고 하며, 평양 서남 대안의 토성리(土城里) 유적과 대방군 치소(治所)로 추정되는 황해도 봉산(鳳山)의 당토성(唐土城)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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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예관명와당(樂浪禮官銘瓦當)
평양시 낙랑토성지(樂浪土城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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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토성(樂浪土城)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에 있는 낙랑시대의 토축성. 성 안에서는 집터·관청·도로·하수도 등의 자취가 발굴되었고, 유물로는 막새기와·벽돌·봉니(封泥)·거울·화폐와 화폐를 주조하였던 틀, 구리화살촉·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글자가 새겨진 기와·벽돌·거울·도장 등이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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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리토성( 所羅里土城)
함경남도 금야군 비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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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
토성 안에서는 길이 10.4m, 너비 6.8m 되는 관청터를 비롯한 여러 채의 건물터와 기와, 벽돌 혹은 돌을 깐 시설물들이 발굴되었으며 여러 가지 질그릇들과 세형동검자루맞추개가 나왔다. 질그릇 가운데 세형동검 관계무덤들에서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화분형단지와 배부른 단지가 적지 않게 있으며 세형동검의 검자루맞추개가 발굴된 사실은 어을동토성이 세형동검시기에 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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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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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성리토성(雲城里土城)
황해남도 은률군 운성리. 성 안에서는 1개의 관청터와 배수로시설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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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이묘(張撫夷墓)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구봉리(舊地名 : 미산면 오강동)에 위치한 전축분으로, 인근 주민들은 여러 명의 인골을 모아 장사를 지냈다는 의미로 ‘도총(都塚)’이라 부르며, 내부에서 ‘대방태수 장무이(帶方太守 張撫夷)’라고 적힌 명문전이 발견되어 ‘장무이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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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이묘(張撫夷墓)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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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성현리에 있는 낙랑시대의 고비(古碑). 낙랑군의 여러 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이 비의 발견으로 점제현이 지금의 용강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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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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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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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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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토성
중국계 토성은 중원지방으로부터 중국세력이 동북지방으로 뻗어나감에 따라 요동·만주지방에서 그들의 지방행정 중심지의 관아가 있는 치소에 만들어졌다. 운성리토성, 낙랑토성, 소라리토성, 어을동토성, 청산리토성, 지탑리토성 등이 알려져 있다. 대부분 벌판 가운데 위치하며 부근에 강이 흐르고 전망이 좋은 그리 높지 않은 둔덕에 자리잡고 평면 형태는 대부분 방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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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탑리토성(智塔里土城)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에 있는 토성지. 토성내에서 한대(漢代)의 벽돌[塼]과 기와조각 등이 채집되었고, 토성부근에 수십기의 한식(漢式) 목곽분(木槨墳) 및 전축분(塼築墳)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북쪽으로 약 4㎞ 지점인 봉산군 구룡리(九龍里)에서 대방태수(帶方太守) 장무이(張撫夷)의 묘가 발견됨에 따라 이 토성을 대방군치지로 추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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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탑리토성(智塔里土城)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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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토성(靑山里土城)
황해남도 신천군 청산리에 있는 옛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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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무덤문화를 들여온 낙랑
낙랑 등의 고분들은 평안남도 대동군·안악군·중화군 등과 황해도 재령군·봉산군·신천군·안악군 등에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의 고분들은 크게 나무덧널무덤[木槨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의 두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당시 중국 한나라에서 쓴 『염철론(鹽鐵論)』이라는 책에서는 후장(厚葬)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그 무거운 관을 중국 본토에서 낙랑군까지 운반해갔다”라고 지적할 정도였으니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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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신천군 새날리
대방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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