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57 新羅 六村 > 金山 加利村 → 漢祇部┆裵 → 加德部
 
-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29319#29371 SBLNGS CHLDRN 29371
 
0032 三國史記(1145)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사여하였다. 楊山部는 梁部라고 하고 성은 李로 하였으며, 高墟部는 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崔로 하였다. 大樹部는 漸梁部(牟梁部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성은 孫으로 하였으며, 干珍部는 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鄭으로 하였다. 加利部는 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裵로 하였으며, 明活部는 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薛로 하였다.
29319#29432 SBLNGS CHLDRN 29432
 
0102 三國史記(1145)
왕이 6부에 명하여 수로왕을 만나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 다섯 부는 모두 이찬이 잔치의 주관자가 되었으나, 오직 漢祇部만이 지위가 낮은 자를 주관자로 삼았다. 수로가 분노하여 자신의 노복인 탐하리에게 명하여 한기부의 주관자 보제를 죽이게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29319#29433 SBLNGS CHLDRN 29433
 
0193 三國史記(1145)
漢祇部의 여자가 한 번에 아들 넷, 딸 하나를 낳았다.
29319#29434 SBLNGS CHLDRN 29434
 
0251 三國史記(1145)
처음으로 남당에서 정사를 보았다. 漢祇部 사람 부도는 집이 가난했지만 아첨하지 않고 글쓰기와 계산을 잘해 당시에 유명하였다. 왕이 그를 불러 아찬에 임명하고 물장고의 사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29319#29435 SBLNGS CHLDRN 29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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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0670 三國史記(1145)
漢祗部의 여인이 한 번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으니, 벼 200석을 내려주었다
29319#29436 SBLNGS CHLDRN 29436
 
0935- 三國史記(1145) 六部少監典
漢祗部 習比部 監臣各一人 大舍各一人 舍知各一人 監幢各三人 史各一人 한지부·습비부는 감신 각 1명, 대사 각 1명, 사지 각 1명, 감당 각 3명, 사 각 1명이 있었다.
29319#29414 SBLNGS CHLDRN 29414
 
0940 高麗史(1451)
935년에 경순왕 김부가 항복해 오자 나라를 없애고 경주가 되었다. 940년에 승격시켜 대도독부가 되었고, 주의 6부 이름을 고쳐 梁部를 中興部로, 沙梁을 南山部로, 本彼를 通仙部로, 習比를 臨川部로, 漢祗를 加德部로, 牟梁을 長福部라 하였다.
29319#29530 SBLNGS CHLDRN 29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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