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 연대기 > 391년부터 474년 사이 > 0449? 중원고려비

고려대왕(高麗大王)이란 표현은 스스로를 고려라 불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란 표현은 건립 시기에 고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던 실정을 알려주며, 신라를 동이(東夷)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五月中高麗大王相王公□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 上下相和守天東來之寐錦忌太子共前部大使者多亐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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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가 고려에 종속되어 있었다.
신라왕이 세세토록 형제같이 지내기를 원하였고 신라왕에게 의복과 교(敎)를 내렸으며 신라에 고려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신라가 고려에 기대기 시작한 것은 391년 왜가 백제의 협력을 얻어 임나를 점령하면서부터다. 이듬해에 신라는 고려에 인질을 보내며 보호를 요청하는데 이후 고려는 417년에 있었던 신라의 왕위교체에도 관여하였다. 신라가 고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때는 일본서기에 464년이라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450년이라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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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스로를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高麗)라 칭했다.
삼국사기는 중국의 많은 기록을 참고하였지만 중국 기록에서 고려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모두 고구려로 바꿔 놓았다. 훗날 나온 삼국유사에도 이 나라를 고려라고 표기해 놓고 있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의도적 개칭작업으로 보인다. 高麗와 王高(왕씨고려)로 구별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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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를 동이(東夷)로 불렀다.
오월에 고려(高麗) 대왕 ... 동이(東夷) 매금(寐錦)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 동이 매금의 상하가 우벌성에 와서 교를 내렸다. ※동이란 동질성을 바탕으로 해서 묶은 종족의 명칭이 아니라 방향을 기준으로 구분한 지역의 주민을 말하는 명칭이었다. 신라는 고려를 예맥(穢貊)이라 칭하기도 했으므로 고려와 신라는 서로 동족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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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라왕에 대한 호칭이 일본서기와 일치한다.
이 비석에서는 신라왕을 매금(寐錦)이라 칭했는데 이 매금(寐錦)이란 말은 광개토왕릉비, 일본서기, 봉평신라비 등에도 나온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것만 놓고 보면 삼국사기의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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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모루(古牟婁)
古牟婁城守事下部大兄耶□ 고모루성 수사 하부 대형 야□ ※중원고려비는 古牟婁城守事라는 관직명으로 보아 古牟婁城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 古牟婁城은 이름으로 보아 牟婁城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牟婁를 포함하는 4현이 구마나리에서 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牟婁의 위치를 구마나리와 중원고려비 사이로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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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지도
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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