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만들어진 동여도에는 伊山이 14곳 나오는데, 단독으로 쓰인 예는 없고 所, 大, 汗, 月, 法, 潘, 鉢 등 다양한 말이 앞에 붙어 所伊山, 大伊山, 汗伊山, 月伊山, 法伊山, 潘伊山, 鉢伊山 등으로 쓰였다.
따라서 伊山은 접미사와 비슷한 역활을 한 듯하다.
그리고 14곳 가운데 6곳이 봉수에 이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伊山은 烽火山의 의미였을 가능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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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烽火山이란 지명이 전국 곳곳에 있지만, 동여도에는 烽火山이란 지명이 아예 나오지 않으며 봉수로 이용된 곳 485곳 중에서 烽이 들어간 곳은 烽火臺 하나뿐이다.
이것은 19세기까지도 烽火山의 의미를 伊山으로 표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도 동여도와 양상이 비슷한데, 그렇다면 烽火山의 의미를 伊山으로 표기하는 일은 15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38456#38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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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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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지명으로 烽峴과 烽山이 나오고 신라의 지명으로 烽岑과 髙烽이 나오는데,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烽이 들어간 지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38456#38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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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驅伊山┆철원┆사냥
世宗實錄地理志┆철원 고석정에서 몰이하고, 낮참에 머물러 간략한 술자리를 베푸니, 종친과 부마가 들어와 모시었다. 명하여 재추와 대언에게는 밖에서 먹도록 하고, 군사들에게도 술과 안주를 나누어 주었다. 馬驅伊山에서 몰이하고 저녁에는 영평의 굴동에 이르러 머무르니, 현감 민공이 맞아 뵈었다.
38456#38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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