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어원
ᐥ고구려는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고구려현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ᐥ
›
-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8439#2752
COMMENT
•
-0037 고려의 도읍
-037 紇升骨城 ┆ 003 國內 ┆ 209 丸都 ┆ 247 平壤城 ┆ 342 丸都城 ┆ 343 平壤東黄城 ┆ 371 國內 ┆ 427 平壤 ┆ 586 長安城
11079
•
0238~0246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17059
›
0366 卓淳
탁순에 관한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백제가 倭와 교류하는 방법을 탁순에 와서 문의하였으나 탁순도 알지 못하였다.
(2) 倭가 신라를 치기 전에 탁순에서 백제와 합류하였다.
(3) 탁순은 㖨과 함께 신라에 가장 먼저 흡수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탁순을 달구벌로 비정한다.
8439#7252
COMMENT
›
0477 久麻那利
구마나리는 그 북쪽에 있는 차령과 함께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구마나리가 하치리의 별읍이었다고 하니 하치리는 구마나리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치리는 그 이름으로 보아 하치리의 상류에 있었을 것이다. 한편, 중원고려비에는 고모루성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보아 고모루성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고모루성 또한 모루성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고, 그 모루가 구마나리에서 멀지 않았다고 하니, 모루를 구마나리와 중원고려비 사이로 설정해 본다.
8439#21829
›
0598┆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8439#15883
›
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臨渝 ┆ 697 盧龍 石城 ┆ 740 盧龍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8439#20740
•
盧
速盧不斯國·咨離牟盧國·莫盧國·狗盧國·駟盧國·萬盧國·捷盧國·牟盧卑離國·弁辰瀆盧國·斯盧國
8469
COMMENT
›
里와 方
○ 나라의 크기를 말할 때, 東西二千里 南北一千里처럼 동서와 남북의 길이로 말하는데, 그 두 길이가 같을 경우, 東西四千里 南北四千里라 하지 않고 方四千里라 하였다.
8439#14101
•
비리(卑離)
비리(卑離)는 옛 지명 어미에 흔히 붙어 있는 백제의 부리(夫里), 신라의 벌(伐)·불(弗)·불(火) 등과 같은 뜻이다. 즉, 평야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어 읍락 또는 나라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일정한 지역의 비리 중 근본이 되는 비리에는 특정한 이름이 붙지 않았을 수 있다. 신라의 6부 이름에 梁部·沙梁部·漸梁部 등이 있는데, 이 중 근본이 되는 것만 양부라고 한 예와 마찬가지다.
8388
COMMENT
•
비리(卑離), 부리(夫里), 벌(伐·弗·火), 홀(忽)
마한에는 명칭에 卑離가 붙은 나라가 7개인데, 占離卑國도 占卑離國의 글자 순서가 바뀐 것으로 보면 8개다.
卑離國·占離卑國·監奚卑離國·內卑離國·辟卑離國·牟盧卑離國·如來卑離國·楚山塗卑離國.
변진이나 왜 그리고 고려에는 명칭에 卑離가 붙은 나라가 없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명칭에 夫里가 붙은 지명이 여럿 나온다.
신라 - 古所夫里.
백제 웅천주 - 所夫里, 古良夫里.
백제 완산주 - 古沙夫里, 夫夫里.
백제 무진주 - 未冬夫里(未多夫里?), 半奈夫里 ...
8434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