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4 戰國┆-0108 漢郡┆-0037 高麗都┆-0006 樂浪·靺鞨┆0238~0246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0238~0246 東夷┆0238~0246 韓┆0366
三韓地理圖┆0369 七國┆0369 四邑┆0397 百濟記┆0414 廣開土王陵碑┆0490~0495 東城王 票文┆0512 四縣┆0521 百濟 旁小國┆0529 四村┆0562- 加羅 十二曲┆0562 任那 十國┆0636 百濟 五方┆0660 百濟┆0757 新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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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樂浪郡
┆漢書 25┆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 ┆後漢書 18┆ 朝鮮 (䛁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 ┆晉書 6+7┆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帶方 列口 南新 長岑 提奚 含資 海冥
8439#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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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7 高麗都
-037 紇升骨城 ➔ 003 國內 ➔ 209 丸都 ➔ 247 平壤城 ➔ 342 丸都城 ➔ 343 平壤東黄城 ➔ 371 國內 ➔ 427 平壤 ➔ 586 長安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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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漢水·漢城·漢山
漢江의 남쪽 가에 있는 풍납토성은 漢나라 진번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漢水, 漢城 그리고 漢山의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듯하다. 한수는 한강으로 명칭이 변했고 한산은 남한산으로 변했으며 북한산으로 불리던 산은 지금 아차산으로 명칭이 바뀌어 있다.
8439#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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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東夷
弱水↑⸢扶餘⸥↓高句麗 □ 鮮卑 ← 扶餘 → 挹婁 □ 扶餘↑⸢高句麗⸥↓朝鮮·濊 □ 高句麗 → 沃沮 □ 扶餘·挹婁↑⸢沃沮⸥↓濊 □ 高句麗 ← 沃沮 □ 夫餘↗挹婁 □ 未知↑⸢挹婁⸥↓沃沮 □ 高句麗·沃沮↑⸢濊⸥↓辰韓 □ 濊 → 大海 □ 朝鮮 → 濊
8439#8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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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古奚津┆忱彌多禮
❶ 道武→陽武→道康┆古奚津→冬音→躭津┆道康+躭津→康津
❷ 忱彌多禮·枕彌多禮➔□牟羅·躭牟羅➔枕羅·躭羅·耽羅
양직공도(526~539)에는 枕羅가 등장하는데 일본서기(720)의 369년과 397년의 기록에 나오는 忱彌多禮 및 枕彌多禮와 연결될 수 있다.
수서(636)는 제주도를 □牟羅라 했는데, 북사(659)는 耽牟羅로 표기하였고, 삼국사기(1145)는 476년과 498년의 기록에 각각 躭羅와 耽羅로 표기하였다. 508년에 와서는 일본서기도 耽羅라 했다.
8439#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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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8 遼西┆右北平┆北平
▐ 漢 遼西┆且慮 海陽 新安平 柳城 令支 肥如 賓從 交黎 陽樂 狐蘇 徒河 文成 臨渝 絫 ➔ 後漢 遼西┆陽樂 海陽 令支 肥如 臨渝 ➔ 晉 遼西┆陽樂 肥如 海陽 ➔ 魏 遼西┆肥如 陽樂 海陽
▐ 漢 右北平┆平剛 無終 石成 廷陵 俊靡 薋 徐無 字 土垠 白狼 夕陽 昌城 驪成 廣成 聚陽 平明 ➔ 後漢 右北平┆土垠 徐無 俊靡 無終 ➔ 晉 北平┆徐無 土垠 俊靡 無終 ➔ 魏 北平┆朝鮮 新昌³
▐ 齊 北平┆新昌³ 肥如 ➔ 隋 北平┆新昌³ ➔ 隋 北平┆盧龍
8439#1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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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平州
619 平州 ┆ 臨渝 肥如 ┆ 臨渝 盧龍 ┆ 臨渝 盧龍 撫寧 ┆ 624 盧龍 撫寧 ┆ 641 盧龍 臨渝 ┆ 697 盧龍 石城 ┆ 740 盧龍 石城 馬城 ┆ 742 北平郡 ┆ 758 平州
8439#2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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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반도의 지명
차현과 죽령 이북의 지명은 한나라가 -108년에 설치한 4군의 현 이름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후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임진강 이남에 있었던 삼한의 나라 이름이 나타나는데 모두 78국이다.
고려가 313년에 낙랑을 멸망시키고 475년에 백제마저 차현 이남으로 밀어내고 난 뒤에는 차현과 죽령 이북의 지명이 고려계로 개칭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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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한국계 - 卑離·夫里 伐·弗·火
삼국지(289)에 나오는 마한에는 卑離가 붙은 나라가 8개인데 변진이나 왜 그리고 고려에는 없다. 삼국사기(1145)에는 夫里가 붙은 지명이 여럿 나오는데 거의 차현 이남이고 왜나 고려에는 없으며 신라에도 거의 없다. 따라서 비리와 부리는 시대의 차이에 따른 표기의 차이인 듯하다. 낙동강 유역에서는 지명에 伐·弗·火이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벌은 들이라는 뜻으로 비리·부리와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비리·부리와 벌·불은 같은 말에서 나온 듯하다.
8439#1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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❺ 고려계 - 襄·壤
襄·壤은 들을 훈차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들어간 지명은 國襄, 東襄, 中壤, 西壤, 好壤 그리고 故國壤처럼 왕의 무덤이 있는 들의 지명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차현과 죽령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었다.
낙랑군 조선현을 平壤으로 바꾼 것이 확산의 대표적 사례다.
이 襄·壤은 차현과 죽령 이남의 지명에 붙은 卑離·夫里·伐·弗·火과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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❻ 고려계 - 忽
차현과 죽령 이북에는 忽이 붙은 지명이 많은데, 이는 남부 지역에 거의 없는 현상이다.
이 忽은 골 또는 고을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차현 이남의 卑離·夫里와 죽령 이남의 伐·弗·火이 들을 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나라가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4군이나 고려가 396년에 한성백제로부터 뺏은 58개의 성에는 忽이 들어간 지명이 없다. 따라서 차현과 죽령 이북의 忽이 들어간 지명은 고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붙인 지명이다.
8439#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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里와 方
○ 나라의 크기를 말할 때, 東西二千里 南北一千里처럼 동서와 남북의 길이로 말하는데, 그 두 길이가 같을 경우, 東西四千里 南北四千里라 하지 않고 方四千里라 하였다.
8439#1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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