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ε δ − + ·
start x┆start - 0.1 seconds┆start + 0.1 seconds┆ε↔x┆δ↔ε┆end - 0.1 seconds┆end + 0.1 seconds┆end x ▐ 좌우의 ·은 각각 start와 end 설정을 취소하는 것이고 -와 +는 start와 end를 각각 0.1초씩 앞당기거나 뒤로 물리는 버튼이다. δ는 단어의 뜻일 경우에 설정하고 ε은 단어의 예문일 경우에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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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① 고려와 한국은 서로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② 고려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맥, 예, 옥저 그리고 부여는 발해의 압록부, 남해부, 책성부 그리고 부여부가 되었다. 왕씨고려가 고려계승을 내세울 때 이미 고려계승을 내세운 그 발해가 수백년째 건재하고 있었다. ③ 고려의 일부였던 대방만 신라의 땅이 되었고 삼국사기가 고려의 땅으로 분류한 한강 하류는 원래 백제가 있던 곳이다. 왕씨고려는 그런 신라의 후속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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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60 70 80 90 100
volume in percen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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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❶ 생산에 기여한 만큼 물질을 분배해야 한다.
공산주의 공동분배는 게으른 자가 부지런한 자의 생산물을 훔쳐간다. 시장을 통해 분배가 이루어지면 이런 도둑질은 사라진다. 시장경제의 정의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 물질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의 매매 차익은 생산에 대한 기여 없이 물질을 분배받는 것으로 시장경제의 정의를 훼손한다. 토지공개념은 이런 도둑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당연히 공산주의에서 벌어지는 도둑질도 반대하고 그래서 반공(反共)이다. 또 공기업 민영화와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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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❷ 토지 불산소득을 얻는 사람은 토적이다.
불산소득(不産所得)은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물질을 분배받는 것으로 일종의 도둑질이다. 생산에 대한 기여는 노동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자본의 형태가 될 수도 있으며 땅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땅이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는 임대료 정도이며 부동산 매매 차익은 생산에 대한 기여 없이 물질을 분배받는 불산소득이다. 토지를 통해 불산소득을 얻는 사람을 토적(土賊)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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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❸ 불로소득이 아니라 불산소득이 나쁘다.
불로소득(不勞所得)이란 표현은 노동을 하지 않고 물질을 분배받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표현은 정당하지 않은 소득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고 물질을 분배받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노동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시장경제에서는 노동 외에도 자본과 땅 등을 생산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정당하지 않은 소득에서 그러한 것들은 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불산소득(不産所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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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❹ 땅은 나라가 가지고 집은 사람이 가진다.
이것이 토지 불산소득을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기존의 사유 재산권을 존중하면서 이러한 상태에 이르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사유지를 사들여 국유지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방법을 써야 한다. 지금 토지공개념이라 불리는 법률은 사유지가 남아 있는 동안만 적용되는 과도기적인 것이다. 국유지에서는 개인이 국가에 임대료를 내고 주택, 공장, 농장 등을 구축하여 이용하거나 거래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하나로 묶여 있는 부동산에서 땅과 집을 분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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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❺ 토지공개념 때문에 위헌 판결을 받은 법률은 없다.
토지공개념이 적용된 법률의 일부가 중복과세, 형평성, 과도한 제한 등의 문제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택지 소유에 상한을 둔다거나 개발 이익을 환수한다거나 토지 초과 이득에 세금을 물린다거나 하는 법률의 기본 취지는 위헌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위헌 판결을 받은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한 법률은 계속 살아 있거나 이후의 위헌 소송에서 합헌 판결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지공개념은 비슷한 개념이 이미 헌법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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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❻ 토지 사유재산권은 이전부터 침해받고 있었다.
토지용도지역은 사유지의 용도를 제한하는 것이고 개발제한구역은 사유지의 개발을 제한하는 것이며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유지의 거래를 제한하는 것이다. 모두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토지공개념과 맥락이 같다. 다만 토지공개념의 토지초과이득세와 개발이익환수는 토지의 사용이나 거래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것이다. 토지의 거래 이익이 불산소득(不産所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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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❼ Henry George의 주장은 한국에 맞지 않는다.
토지의 사유를 허용하되 임대 수익만 몰수하면 된다는데, 이것은 토지가 생산에 기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토지는 임대료만큼 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임대 수익이 없다면 안쓰는 땅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산에 활용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아까운 땅이 많아질 것이다. 또 한국에서는 임대 수익이 아니라 매매 차익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19세기 미국 학자 Henry George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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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❾ 토지 불산소득에 대한 기대감과 소외감
은행에서 많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은 이자보다 매매 차익이 훨씬 클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고 또 집값이 오르면 집이 없는 사람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애써 집을 사려고 한다. 모두 토지 불산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토지 불산소득은 정당하지 못한 분배다.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그에 바탕하여 국유지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장기적인 국가 목표를 제시할 때, 토지 불산소득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시장경제의 정의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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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荒唐古記 序 1
荒唐古記(황당고기)는 신라말 도인 肝疸夫(간달부)가 저술한 한민족 비밀역사책이다. 황당고기가 씌어질 당시는 신라에서 왕씨고려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였는데, 신라를 멸하고 새 왕조를 세운 왕고는 자신들의 정통성에 해가 될까 우려하여 10만년 한민족 웅비의 역사를 말살하기로 하고 신라에 전해 내려오던 역사책들을 모두 불살라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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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荒唐古記 序 2
그러나 다행히 태워지기 직전에 있던 舊約秘話(구약비화), 半指遺錄(반지유록), 武俠通鑑(무협통감) 세 권의 책을 간달부가 필사해 두었다가 나중에 황당고기 한 권으로 엮어내면서 한민족사는 가까스로 사라질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당고기를 가진 자는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므로 간달부는 젊은이들 중에 나은 놈들만 뽑아서 만들었다는 신라의 비밀지하조직 이놈이낫지(Illuminati) 요원들에게 책의 내용을 모두 외우게 한 후 스스로 불태워 없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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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荒唐古記 序 3
그후 간달부는 금강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폭포 아래에 있는 구룡 동굴에 숨어 살고 있었는데, 끝내 왕고가 보낸 자객 척준의 습격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간달부는 죽기 직전 이놈이낫지 요원 관술에게 유언을 남겨 황당고기를 절대 문자로 기록하지 말고 구전으로만 전할 것이며 1000년이 지난 후 麟討耐鬪(인토내투)에 올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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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편찬 시기는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로 추정된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한 후 딸에게 맡겼는데 선제(-73 ~ -48) 시대에 이르러 외손자 양운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본래는 太史公書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으며 줄여서 史記라 하게 되었다. 本紀 12권, 表 10권, 書 8권, 世家 30권, 列傳 70권으로 구성된 紀傳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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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漢의 高祖 元年(-206)부터 新의 地皇 四年(23)까지 229년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紀12편, 表8편, 志10편, 傳70편 그리고 共10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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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1145년경에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의 역사서로 본기 28권(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 12권), 志 9권, 표 3권, 열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三國史였으나 후대에 三國史記로 불리게 되었다. 같은 紀傳體 사서인 사마천의 太史公書가 太史公記를 거쳐 史記라 불리게 된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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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ᐥ전두환 회고록은 귀중한 역사자료ᐥ
최근 출간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작가 정아은은 이 논픽션을 쓰면서 <전두환 회고록>과 <전두환 육성 증언>을 파고들었다. 책에 가장 많이 인용한 문헌이 이 두 책이다. 이렇게 요긴하게 인용되는 회고록을 출판금지시킨 것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겠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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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ᐥ중국분할공정은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ᐥ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중국이 지금은 스스로 제국주의적 야심을 드러내고 가해자가 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명분이 상당히 유치해서 주변국들은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짜증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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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キトラ古墳壁画で西壁に描かれた四神・白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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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卷一 荒國本紀 降臨 2
그리고 나서 桔鰻瓷霰(길만자로)산에 내려와 보리수나무 아래에 신시를 베풀었으니 이 때가 지금으로부터 10만년 전의 일이었다. 여와가 다스린지 9만년이 되자 顧離喇(고리나)와 蘿邇蘊(나이온)이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므로 진화경으로 도모했으나 고리나만 성공하여 閼褒女(알포녀)가 되었으나 나이온은 실패하여 그만 顧囊離(고낭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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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卷二 荒國本紀 濁酒大戰 1
황국을 세운 10 탱구리는 2333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아들 紇率靂(흘률력)에게 물려주었고 흘률력은 1501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아들 隷乙猫(례을묘)에게 물려주었다. 례을묘가 황기 4999년(서기전 5001년)에 죽자 그의 아들 催藕(최우)가 4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화하를 비롯한 6국은 원래 황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皇帝櫶燼(황제헌신)에 이르러 역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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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卷二 荒國本紀 濁酒大戰 2
이에 최우천황이 친히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 탁주에 이르러 화하의 군대와 맞섰다. 臍桔骨桶(제길골통)이 묘책을 내어 광우병 공포를 퍼뜨리니 화하의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후에도 최우천황은 황제헌신과 70번을 싸워 모두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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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羅民族論
漢나라는 위만朝鮮 병합과 漢사군 설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箕子동래설을 부풀렸다. 이어서 반도의 중남부 지역마저 차지하려고 韓王 이야기를 날조해 내서 옛 眞番 지역을 韓國이라 부르고 辰國도 이 韓國에 넣어 辰韓이라 불렀다. 辰韓에서 나온 新羅는 옛 眞番 지역과 濊를 통합하였는데, 이때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다. 新羅 왕조를 교체한 王氏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高麗를 韓國史에 끼워넣고 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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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韓
왜는 512년에 다시 대전, 논산, 부여 그리고 청주를 돌려주었다. 따라서 東韓은 이들 지역의 북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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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의 변천
1897년 이조가 선포한 大韓帝國의 어원은 三韓이다. 1919년 임시정부는 이것을 이어 大韓民國이라 했고 1948년 반도 남부에 수립된 국가도 이 국호를 계승하였다. 대한민국은 간단히 韓國이라 부른다. 이후 한국과 반도 북부에 수립된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정통성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韓은 한국에서 우리를 지칭하는 유일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전에는 스스로를 朝鮮人이라 불렀는데 민족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남북은 각각 韓民族과 朝鮮民族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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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기 신공황후조 이야기의 출처
①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사건 및 인명과 일치한다. 그래서 신라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③는 삼국지 기록이다. ④와 ⑤는 백제 기록이다. ⑤는 삼국사기와 일치하나 ④는 대응하는 기록이 다른 사료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왜가 백제와 신라를 압도하며 한국을 장악한 정황은 광개토왕릉비(414) 및 송서(488)의 기록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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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南扶余是韩国。남부여는 한국이다.
百济王朝与高丽王朝一起来自扶余,国名和王姓也被称为扶余,但百济的居民是韩国人,百济是韩国。 백제 왕조는 고려 왕조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고 국호와 왕성도 부여라고 했으나 백제의 주민들은 한국인이고 백제는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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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8 ◾至漢山 登負兒嶽
至漢山 登負兒嶽은 温祚가 慰禮城에 도읍한 후 순행하다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漢山은 남한산이고 負兒嶽은 북한산 인수봉이므로 至漢山 登負兒嶽은 남한산에 이르러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되어 모순된다. 漢山을 훗날 신라의 北漢山州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모순이 해소되나 그것은 고려에서 나와 한국으로 올 때의 이야기에서나 필요했던 구절로, 慰禮城에서 나와 순행하는 이야기에서라면 필요없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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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5 ◾發朝鮮
일주서에 나오던 發人과 良夷가 나오지 않고 發朝鮮이 등장했다. 發朝鮮의 發은 發人일 것이니 朝鮮은 良夷일 가능성이 있다. 穢와 貉을 묶어 穢貉이라 한 것처럼 發과 朝鮮을 묶어 發朝鮮이나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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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 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과 땅은 각각 검고 누르고 우주는 넓고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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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 日月盈昃 辰宿列張
해와 달은 찼다가 기울고 별은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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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3 寒來暑往 秋收冬藏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가고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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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 閏餘成歲 律呂調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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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 雲騰致雨 露結爲霜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맺혀 서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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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 金生麗水 玉出崑岡
금은 려수에서 나고 옥은 곤산에서 난다. ▐ 麗水는 雲南省 永昌府에 있고 崑山은 荊山의 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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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劍號巨闕 珠稱夜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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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 律呂調陽
율과 여는 천지 양기를 고르게 하니 율은 양이고 즉 여는 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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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9 雲騰致雨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냉기를 만나 비가 된다. 즉 천지 자연의 기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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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設位
參祀者가 손을 씻은 다음 진설 순서에 의해 祭需를 陳設하고 참사자가 배열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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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 露結爲霜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되니 밤 기운이 풀잎에 물방울처럼 이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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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1 金生麗水
금은 여수에서 나니 여수는 중궁의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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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2 玉出崑岡
옥은 곤강에서 나니 곤강은 역시 중국의 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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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3 劍號巨闕
거궐은 칼 이름이며 구야자가 지은 보검(조나라 국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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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4 珠稱夜光
구슬의 빛이 낮같으므로 야광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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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5 果珍李柰
실과중에 오야과 벚의 진미가 으뜸임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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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6 菜重芥薑
나물은 겨자와 생강이 제일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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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7 海鹹河淡
바단물은 짜고 밀물은 맛도 없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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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8 鱗潛羽翔
비늘있는 고기는 물 속에 잠기고 날개있는 새는 공중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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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9 龍師火帝
이란 복희씨는 용으로써, 신동씨는 불로써 벼슬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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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就神位
지방이나 사진을 교의에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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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 鳥官人皇
소호하는 새로써 벼슬을 기록하고 황제는 인문을 갖췄으므로 인황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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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 始制文字
복희씨는 창힐이라는 사람을 시켜 새 발자취를 보고 글자를 처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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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 乃服衣裳
이에 의상을 입게하니 황제가 의관을 지어 등분을 분별하고 위의를 엄숙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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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 推位讓國
벼슬을 미루고 나라를 사양하니 제요가 제순에게 전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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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 有虞陶唐
유우는 제순이요. 도당은 제요이니 즉 중국 고대 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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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志(289) 요약 2
朝鮮을 멸하고 樂浪郡, 真藩郡 그리고 臨屯郡을 설치하였다. 이듬해에는 沃沮에 玄菟郡을 설치하였다. 얼마 후 真藩과 臨屯을 폐하여 樂浪과 玄菟에 합쳤다. 玄菟는 高句麗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沃沮는 樂浪에 소속시켰다. 다시 樂浪의 단단대령 동쪽을 갈라 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가 濊人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樂浪郡의 남쪽은 분할하여 帶方郡을 설치하였다.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으로 이루어져 있다. 馬韓은 서쪽이고 辰韓은 馬韓의 동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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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05 ◾馬韓
잠부론(163)에서 遷居海中이라 한 것이 삼국지(289)에서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으로 바뀌더니 다시 후한서(445)에서 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로 바뀌었다. 바다 가운데가 韓地로 바뀌고 다시 馬韓으로 바뀐 것이다. 삼국지(289)에서 將其左右宮人이라 한 것은 후한서(445)에서 將其餘衆數千人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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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⑦ ◾辰王✘
진왕에 대해 삼국지와 후한서는 이런 차이가 있다. 治月支國 → 都目支國┆其十二國屬辰王 → 盡王三韓之地┆辰韓이 韓의 일부분이니 辰王도 韓의 일부분을 다스리는 게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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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 弔民伐罪
불쌍한 백성을 돕고 죄지은 백성은 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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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 周發殷湯
주발은 무왕의 이름이고 은탕은 왕의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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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 三國志(魏略) -0109⁻
▐ 準이 衛滿에게 쫓겨나 韓으로 갔다면 右渠와 틀어진 歷谿卿도 韓으로 갔을 법한데 辰國으로 간 것을 보면, 右渠의 시기에도 韓이 없었을 것이라는 데 심증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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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7 坐朝問道
좌조는 천하를 통일하여 왕위에 앉은 것이고, 문도는 나라 다스리는 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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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 垂拱平章
밝고 평화스럽게 다스리는 길은 공손히 생각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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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 愛育黎首
예수 즉 백성을 임금이 사랑하고 양육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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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焚香 降神
신위께서 降臨하시어 음식을 드시도록 청하는 뜻으로 祭主를 위시하여 모든 참사자가 신위 앞에 선 다음 제주는 꿇어앉아 분향하고 잔이 차지않게 따른 술잔을 右執事(대개 제주의 子姪이 함)로부터 받아서 茅沙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부은 후에 빈 잔은 우집사에게 건네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姪 조카 질┆茅 띠 모┆沙 모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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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降神 ❶ ↆ
제주가 향을 피운다. 집사가 잔에 술을 부어주면 제주가 退酒 그릇에 3번 나누어 붓고 두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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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 臣伏戎羌
위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던 그 덕에 굴복하여 융과 강도 항복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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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 遐邇壹體
멀고 가까운 나라 전부가 그 덕망이 퍼져서 귀순케 하며 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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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 率賓歸王
거느리고 복종하여 왕에게 돌아오니 덕을 입어 복종치 아니함이 없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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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 鳴鳳在樹
명군 성현이 나타나면 봉이 운다는 말과 같이 덕망이 미치는 곳마다 봉이 나무 위에서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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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7~0534 선비 왕조
● 서진이 망하면서 남가라에 선진 문물을 제공하는 역할은 연나라가 맡게 된 것이 아닐까? 남가라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유목 민족의 문화는 이때 연나라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연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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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 白駒食場
흰 망아지도 덕에 감화되어 사람을 따르며 마당 풀을 뜯어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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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5 化被草木
덕화가 사람이나 짐슴에게만 미칠 뿐 아니라 초목에 까지도 미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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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 賴及萬方
만방에 어진 덕이 고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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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 蓋此身髮
이 몸의 털은 대개 사람마다 없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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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8 四大五常
네 가지 큰 것과 다섯 가지 떳떳함이 있으니 즉 사대는 천지군부요, 오상은 인의예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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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 恭惟鞠養
국양함을 공손히 하라, 이 몸은 부모의 기르신 은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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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參神
참신은 강신을 마친 후에 제주 이하 일동이 일제히 신위를 향하여 재배한다. 神主를 모시고 올리는 제사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하고 紙榜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榜 붙일 방┆參 참여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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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參神 ❷ ↆↆ
일동이 모두 두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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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 豈敢毁傷
부모께 낳아 길러 주신 이몸을 어찌 감히 훼상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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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 女慕貞烈
여자는 정조를 굳게 지키고 행실을 단정히 해햐 함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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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廣開土王陵碑
▐ 이 설화는 고려 왕조의 공식적인 이야기다. 고려의 高씨가 顓頊高陽의 후예라는 이야기는 이 설화와 모순되고 또 고려 왕조에 의해 언급된 적도 없으므로, 북연의 고운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백제 餘씨가 夫餘에서 따온 것처럼 고려 高씨도 高麗라는 나라 이름에서 따왔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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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14 廣開土王陵碑 高麗朱蒙說話
▐ 고려주몽설화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이다. 고려 왕조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 이야기는 고려 왕족이 高씨 성을 사용하기 시작한 즈음에 처음 나타나므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가 부여 계승을 내세우며 餘씨 왕성을 먼저 점유하였으므로 고려는 이와 구별되는 高씨 왕성을 채택하고 그에 맞추어 건국 설화도 부여의 동명설화를 주몽설화로 개작하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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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 男效才良
남자는 재능을 닦고 어진 것을 본받아야 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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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3 知過必改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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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 得能莫忘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배우면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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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5 罔談彼短
자기의 단점을 말 안하는 동시에 남의 단점을 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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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6 靡恃己長
자신의 특기를 자랑말라. 그럼으로써 더욱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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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 信使可覆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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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8 器欲難量
사람의 기략은 깊고 깊어서 헤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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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9 墨悲絲染
흰 실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 희지못함을 슬퍼한다. 즉 사람도 친구를 조심하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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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初獻
제주는 강신 때와 같이 꿇어앉아 분향한 후 좌집사로 부터 받은 잔에 우집사가 술을 가득히 부어주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세번에 기울여 부은 뒤에 양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이를 받들어 먼저 考位 앞에 올린다. 다음으로 비위앞에 올리는 잔은 모사에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받아서 올리고 저를 고른 후에 재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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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初獻 ❸ ↆ
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주고 술을 부어준다. 제주는 잔을 향불 위에 세 번 돌리고 집사에게 준다. 집사가 술을 올리고, 젓가락을 음식 위에 놓는다. 제주가 두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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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 詩讚羔羊
시전 교양편에 문왕의 덕을 입어 남국 대부가 정직하게 됨을 칭찬하였으니 사람의 선악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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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 景行維賢
행실을 훌륭하게 하고 당당하게 행하면 어진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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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 剋念作聖
성인의 언행을 잘 생각하여 수양을 쌓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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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 德建名立
덕으로서 세상의 모든 일을 행하면 자연 이름도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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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7 ◾
동성왕이 495년에 보낸 표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표문에서 獫狁 또는 匈梨라 한 것을 여기서는 魏虜로 바꾸어 놓았다. 북위가 백제를 침공할 이유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북위의 역사를 기록한 위서(554)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시 백제는 고려와 잦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표문의 獫狁 또는 匈梨는 고려라고 보아야 한다. 魏는 齊의 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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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 形端表正
형용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마음도 바르며 또 표면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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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 空谷傳聲
소리를 산골짜기에서 치면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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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2 ◾
백제 성왕이 왜왕에게 한 『高麗與新羅 通和幷勢 謀滅臣國與任那 고려와 신라가 화친하고 세를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합니다.』는 말은 『百濟棄漢城與平壤 新羅因此入居 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버리자 신라가 한성에 들어가 살았다.』고 기록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삼국사기에는 『新羅取東北鄙置新州 신라가 동북 변경을 차지하고 신주를 설치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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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7~0589 東晉→劉宋→蕭齊→蕭梁➔陳
陳霸先은 梁敬帝의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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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 虛堂習聽
빈방에서 소리를 내면 울리어 다 들린다. 즉 착한 말을 하면 천리밖에서도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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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5 北齊書(636)
▐ 백제의 餘씨 왕성은 초고왕이 고려의 평양성을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이듬해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고, 고려의 高씨 왕성은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신라에 침입한 왜를 내쫓은 지 7년 후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며, 신라의 金씨 왕성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임나를 병합한 지 3년 후의 기록에 처음 나타났다. 패권을 장악했을 때 왕성이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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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8 金氏┆建号┆朕┆太祖
建号는 551년에 開國 연호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朕이라는 호칭과 함께 제국을 자처한 것이다. 太祖도 이즈음에 추존된 듯한데, 金氏 왕성도 이즈음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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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7 禍因惡積
재앙은 악을 쌓음에 인한 것이므로 재앙을 받는 이는 평일에 악을 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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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8 福緣善慶
복은 착한 일에서 오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경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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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9 尺璧非寶
한 자 되는 구슬이라고 해서 결코 보배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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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讀祝
축문 읽는 것을 독축이라 하며 초헌 후에 일동이 꿇어앉으면 제주옆에 앉은 축관이 천천히 크게 축문을 읽는다. 다 읽고나면 일동은 기립하여 재배한다. 독축은 초헌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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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讀祝 ❹ ↆↆ
모두 잠시 꿇어 않았다가 다같이 두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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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 寸陰是競
보배로운 구슬보다 잠깐의 시간이 더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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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 資父事君
부모를 섬기는 효도로서 임금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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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2 曰嚴與敬
임금을 대하는 데는 엄숙함과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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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 孝當竭力
부모를 섬기는 데는 마땅히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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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 忠則盡命
충성한 즉 목숨을 다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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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 臨深履薄
깊은 곳에 임하듯 하며 얇은 데를 밟듯이 세심 주의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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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 夙興溫凊
일찍 일어나서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케 하는 것이 부모 섬기는 절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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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3.09.24 日本書紀(720)
▐ 삼한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들만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나라는 660년에 백제왕조를 무너뜨리고 도성에 있던 왕족과 귀족들을 당나라로 데려갔다. 지방에 있던 왕족과 귀족들은 주류성에 모여 왕조의 재건을 시도하였으나 663년에 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것이 한국에 백제계 성씨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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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7 似蘭斯馨
난초같이 꽃다우니 군자의 지조를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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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8 如松之盛
소나무 같이 변치 않고 성함은 군자의 절개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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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84 장회태자묘(章怀太子墓) 백라관과 새깃쓰개
새깃쓰개를 한 사신의 국적에 대해서는 신라라는 견해와 고려라는 견해가 병존한다. 차남이었던 이현이 태자로 책봉된 해는 형이 죽은 675년인데 이때는 이미 고려가 망한 후이기 때문에 고려의 사신일 수는 없다는 것이 전자의 논거다. 신라는 649년에 관복을 당나라 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신이 조우관을 썼을 수 없고 고려가 망한 후에도 고려왕은 요동도독조선군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고려의 옷차림을 한 사신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후자의 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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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9 川流不息
내가 흘러 쉬지 않으니 군자의 행지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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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95 少皥金天┆太祖漢王
少昊 昊又作皞 皓 顥 又稱青陽氏 金天氏 窮桑氏 雲陽氏 或稱朱宣 신라와 가라 金씨가 少昊金天의 후예를 자처한 것은 북연의 고운이 顓頊高陽의 후예를 자처한 것처럼 성씨가 만들어지고 난 후에 가미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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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亞獻
둘째번 잔을 올리는 것을 아헌이라 하며 주부[주부는 재배가 아닌 四拜]가 올리는 것이 관례이나 제주 다음의 근친자가 초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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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 淵澄取暎
못이 맑아 비치우니 군자의 마음씨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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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6 ◾金日磾
문무왕릉비(681), 흑치상지묘지명(699)이 그리고 흑치준묘지명(706)에서 보는 것처럼 秺侯와 그 후손이 七葉에 걸쳐 西漢에 참여한 것은 흔히 회자되던 이야기였다. 문무왕릉비의 다른 점은 秺侯를 자신들의 조상이라 주장했다는 점이다. 신라김씨가 閼智 대신 秺侯를 뿌리로 내세운 것은 당시 秺侯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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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 容止若思
행동을 침착히 하고 조용히 생각하는 태도를 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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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 言辭安定
태도만 침착할뿐 아니라 안정케 하여 쓸데 없는 말을 삼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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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3 篤初誠美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처음에 신중히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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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4 愼終宜令
처음뿐만 아니라 끝맺음도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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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5 榮業所基
이상과 같이 잘 지키면 번성하는 기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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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6 籍甚無竟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이 길이 전하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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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7 學優登仕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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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8 攝職從政
벼슬을 잡아 정사에 좇는다는 뜻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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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9 存以甘棠
주나라 소공이 아가위나무 아래서 백성을 교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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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終獻
아헌자 다음가는 근치자가 끝잔으로 올리는 것을 종헌이라고 하는데, 종헌자는 잔을 받아서 초헌 때와 같이 모사에 세번 기울였다가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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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 去而益詠
소공이 죽은 후 남국의 백성이 그의 덕을 추모하여 감당시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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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 通典
① 晉太康地志同'秦築長城所起自碣石' ② 遂城(古遂武也秦築長城之所起) ③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 ▐ 태강지리지에는 애초에 秦築長城所起自碣石이라고만 되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던 것에 사기색은이 ②의 영향으로 생겨나 당시에 퍼져 있던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이라는 이야기를 반영하여 大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樂浪遂城縣有를 떼어내고 碣石山長城所起라고만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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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 樂殊貴賤
풍류는 귀천이 다르니 천자와 제후, 사대부가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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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 禮別尊卑
예도에 존비의 분별이 있으니 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간의 차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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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3 上和下睦
위에서 사랑하고 아래서 공경함으로써 화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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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4 夫唱婦隨
지아비가 부르면 지어미가 따르니 즉 원만한 가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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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5 外受傅訓
여덟살이 되면 밖의 스승에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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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 入奉母儀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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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4 ❺ 少昊氏金天┆日磾·秺亭侯
封秺亭侯自秺亭已降七葉은 문무왕릉비(681)에 나오는 (秺)侯祭天之胤傳七葉과 내용이 일치하므로 신라 金씨 왕조가 金日磾의 후손을 자처한 것은 더욱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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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7 諸姑伯叔
고모와 백부, 숙부 등은 친척임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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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8 猶子比兒
조카들도 자기의 아들과 같이 취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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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9 孔懷兄弟
형제는 서로 사랑하며 의좋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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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啓飯揷匙
메 그릇 뚜껑을 열어 놓고 수저를 꽂는 것으로서 이때 수저 바닥이 동쪽(신위를 향해 선 제주의 오른편)으로 가게하여 꽂는다. ┆啓 열 계┆飯 밥 반┆揷 꽂을 삽┆匙 숟가락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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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 同氣連枝
형제는 부모와 기움을 같이 받았으니 나무에 비하면 가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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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1 交友投分
벗을 사귀는 데는 서로 분에 맞는 사람끼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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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2 切磨箴規
열심히 닦고 배워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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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3 仁慈隱惻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한 측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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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4 造次弗離
남을 동정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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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43▐ 官寺奴婢津驛雜尺
8조에서 왕건이 경계하라고 한 무리는 車峴以南公州江外 州郡人과 官寺奴婢 津驛雜尺 두 부류인데, 車峴以南公州江外 州郡人을 경계하라고 한 이유는 山形地勢並趨背逆과 㗸統合之怨 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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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5 節義廉退
청렴·절개·의리·사양함과 물러감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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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6 顚沛匪虧
엎드려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지지 않으니 용기를 잃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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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7 性靜情逸
성품이 고요하면 뜻이 편안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동작함은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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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8 心動神疲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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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 守眞志滿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충만하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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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侑食 ❺ ↆ
집사가 밥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은 뒤 젓가락을 내려 놓는다. 제주가 두 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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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添酌
초헌자가 신위 앞에 꿇어앉아 우집사가 새로운 술잔에 술을 조금 따라주면 받아서 좌집사에게 준다. 좌집사는 이것을 받아, 종헌자가 종헌때 모사에 기울였기 때문에 차지 않은 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첨작하고 재배한다. 첨작을 侑食이라고도 한다.┆添 더할 첨┆酌 술 부을 작┆侑 권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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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逐物意移
사물의 변천을 보고 움직이는 의지는 정하지 않고 지지할 곳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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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堅持雅操
맑은 절조를 굳게 지키면 나의 도리가 극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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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好爵自縻
스스로 벼슬을 얻게 되니 천작을 극진히 하면 인작이 스스로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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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都邑華夏
도읍은 왕성의 지위를 말한 것이고 화하는 당시 중국을 자칭하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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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東西二京
동과 서에 두 서울이 있으니 동경은 낙양이고, 서경은 장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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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背邙面洛
동경은 북에 북망상이 있고 낙양은 남에 낙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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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浮渭據涇
위수에 뜨고 경수를 눌렀으니 장안은 서북에 위천·경수 두 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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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宮殿盤鬱
궁전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서린 듯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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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樓觀飛驚
궁전 안의 물견대(物見台)는 높아서 올라가는 듯 나는 듯하여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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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圖寫禽獸
궁전 내부에는 화가들이 그리고 조각한 작품들이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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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闔門
합문이란 참사자 일동이 강림하신 신위께서 진설한 제주 음식을 흠향 하시도록 한다는 뜻으로 방에서 나온 후 문을 닫는 것을 말하는데 대청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뜰 아래로 내려와 조용히 기다린다.┆闔 문짝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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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闔門 ❻
일동 무릎을 꿇고 잠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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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畵采仙靈
신선한 신령의 그림도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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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9.05.16◾公嶮鎭 ②
그러나 追及于曷懶水高麗人爭走冰上(갈라수까지 추격하니 왕고인들이 다투어 얼음 위로 달아났다)는 5월에 벌어졌던 공험진 전투와 어울리지 않고 하루에 수만명이 참여하는 전투를 세 번이나 벌였다는 점도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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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丙舍傍啓
병사 곁에 통고를 열어 궁전내를 출입하는 사람들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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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甲帳對楹
아름다운 갑장이 기둥을 대하였으니 동방삭이 갑장을 지어 임금이 잠시 정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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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肆筵設席
자리를 베풀고 돗을 베푸니 연회하는 좌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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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鼓瑟吹笙
비파를 치고 저를 부니 잔치하는 풍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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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이 이야기와 연결시켜 볼 수 있으나, 호공이 마한을 방문한 이야기에 붙은 설명과 모순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변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삼국사기는 진나라 말기에 연나라 등지의 유민이 진한으로 온 이야기를 신라의 기원으로 바꾼 데 이어 연나라 등지의 유민도 조선의 유민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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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의 저자는 海東에 국가가 있은 것은 箕子가 주나라로부터 朝鮮에 봉해진 때부터이며 衛滿의 참칭을 거쳐 한나라의 玄莬와 樂浪이 되었다가 나중에 高麗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新羅가 나온 辰韓에는 秦의 난민들이 와서 섞여 살았으며 百濟는 馬韓의 동북쪽 땅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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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高麗와 新羅의 유래가 각기 다르게 되는 이런 인식은 高麗계승을 내세운 王氏高麗가 통합을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래서 新羅의 뿌리를 秦의 유민에서 朝鮮의 유민으로 교체하여 新羅를 朝鮮의 땅에서 번성했던 高麗와 하나로 묶은 것이 아닐까? 이는 일제가 한일합방을 유지하기 위해 日本과 韓國의 뿌리가 같다는 日鮮同祖論을 내세운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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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陞階納陛
문무백관이 계단을 올라 임금께 납폐하는 절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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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弁轉疑星
많은 사람들의 관에서 번쩍이는 구슬이 별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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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右通廣內
오른편에 광내가 통하니 광내는 나라 비서를 두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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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左達承明
왼편에 승명이 사모치니 승명은 사기를 교열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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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旣集墳典
이미 분과 전을 모았으니 삼황의 글은 삼분이고 오제의 글은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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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開門
개문이란 문을 여는 것을 말하는데 제주는 문을 열기전에 우선 기침을 세 번하고 난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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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亦聚群英
또한 여러 영웅을 모으니 분전을 강론하여 치국하는 도를 밝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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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杜稿鍾隸
초서를 처음으로 쓴 두고와 예서를 쓴 종례의 글도 비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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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漆書壁經
한나라 영제가 돌벽에서 발견한 서골과 공자가 발견한 육경도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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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府羅將相
마을 좌우에 장수와 정승이 벌려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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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路夾槐卿
길에 고관인 삼공 구경이 마차를 타고 궁전으로 들어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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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戶封八縣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여덟 고을 민호를 주어 공신을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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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家給千兵
제후나라에 일천 군사를 주어 그 집을 호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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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高冠陪輦
높은 관을 쓰고 연을 모시니 제후의 예로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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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驅轂振纓
수렐를 몰 때 갓끈이 떨이지니 임금 출행에 제후의 위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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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世祿侈富
대대로 녹이 사치하고 부하니 제후 자손이 세세관록을 성전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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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獻茶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린 다음 수저로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고 著를 고르고 난 후에 참사자 일동은 잠시 揖한 자세로 있다가 제주의 기침 소리에 따라서 고개를 든다. ┆著 나타날 저┆揖 읍┆獻 바칠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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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獻茶 ❼
국을 물리고 숭늉을 올린다. 밥을 숭늉에 세 번 말아 놓고 수저를 숭늉 그릇에 놓는다. 잠시 무릎을 꿇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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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車駕肥輕
수레의 말은 살찌고 몸의 의복은 가볍게 차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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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策功茂實
공의 꾀함에 무성하고 충실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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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勒碑刻銘
비석에 그 이름을 새겨 그 공을 후세에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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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磻溪伊尹
문왕은 반계에서 강태공을 맞고 은왕은 신야에서 이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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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佐時阿衡
때를 돕는 아형이니 아형은 상나라 재상의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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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奄宅曲阜
주공은 공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노국을 봉한 후 곡부에 궁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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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微旦孰營
주공의 단이 아니면 어찌 큰 궁전을 세웠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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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桓公匡合
제나라 환공은 바르게 하고 모았으니 초를 물리치고 난을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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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濟弱扶傾
약한 나라를 구제하고 기울어지는 제신을 도와서 권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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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綺回漢惠
한나라 네 현인의 한 사람인기가 한나라 혜제를 회복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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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撤匙復飯
철시복반이란 숭늉 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둔 다음 메 그릇에 뚜껑을 닫는 것을 말한다.┆메 제사 때 神位 앞에 놓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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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說感武丁
부열이 들에서 역사함에 무정의 꿈에 감동되어 곧 정승을 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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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俊乂密勿
준걸과 재사가 조정에 모여 빽빽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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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多士寔寧
바른 선비들이 많으니 국가가 태평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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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晋楚更覇
진과 초가 다시 으뜸이 되니 진문공과 초장왕이 패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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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趙魏困橫
조와 위는 힁에 곤하니 육국 때에 진나라를 섬기자함을 힁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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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假途滅虢
길을 빌려 괵국을 멸하니 진헌공이 우국길을 빌려 괵국을 멸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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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踐土會盟
진문공이 제후를 천토에 모아 맹세하고 협천자영 제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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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何遵約法
소하는 한고조로 더불어 약법 삼장을 정하여 준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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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韓弊煩刑
한비는 진왕을 달래 형벌을 시행하다가 그 형벌로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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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起翦頗牧
백기와 왕전은 진의 장수이고 염파와 이목은 조의 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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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辭神
참사자 일동은 재배한 다음 신주는 본래의 사당으로 모시고 지방과 축문은 불사른다. 즉 신위와 작별을 뜻하는 것이다.┆辭 말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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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辭神 ❽ ↆↆ
숭늉의 수저를 거두고 밥그릇을 닫는다. 일동 두 번 절한다. 지방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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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用軍最精
군사 쓰기를 가장 정결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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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宣威沙漠
장수로서 그 위엄이 멀리 사막에까지 선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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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馳譽丹靑
그 명예는 생전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전하기 위하여 초상을 기린각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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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九州禹跡
하우씨가 구주를 분별하시니 기·연·청·서·양·옹·구 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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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百郡秦幷
진시황이 천하봉군하는 범을 페하고 일백군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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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嶽宗恒岱
오약은 동태·서화·남형·북항·중숭산이니 항산과 태산이 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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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禪主云亭
운과 정은 천자를 봉선하고 제사하는 곳이니 운정은 태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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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雁門紫塞
안문은 봄기러기가 북으로 가는 고로 안문이고 흙이 붉은 고로 자색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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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鷄田赤城
계전은 옹주에 있고 적성은 기주에 있는 고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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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昆池碣石
곤지는 운남 곤명현에 있고 갈석은 부평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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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撤床
모든 제수를 물리는 것을 철상이라 하며 제수는 뒤쪽에서부터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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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鉅野洞庭
거야는 태산 동편에 있는 광야, 동정은 호남성에 있는 중국 제일의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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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 曠遠綿邈
산, 벌판, 호수 등이 아득하고 멀리 그리고 널리 줄지어 있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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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 巖峀杳冥
큰 바위와 메뿌리가 묘연하고 아득함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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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治本於農
다스리는 것은 농사를 근본으로 하니 중농정치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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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務玆稼穡
때를 놓치지 말고 심고 거두는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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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俶載南畝
비로소 남양의 밭에서 농작물을 배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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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我藝黍稷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농사일에 열중하겠다.
http://qindex.info/i.php?x=45089
 167 稅熟貢新
곡식이 익으면 부세하여 국용을 준비하고 신곡으로 종묘에 제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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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勸賞黜陟
농민의 의기를 양양키 위하여 열심히 한 자는 상주고 게을리 한 자는 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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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孟軻敦素
맹자는 그 모친의 교훈을 받아 자사문하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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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제사가 끝나는 대로 참사자와 가족이 모여서 함께 먹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또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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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史魚秉直
사어라는 사람은 위나라 태부였으며 그 성격이 매우 강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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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庶幾中庸
어떠한 일이나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일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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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 勞謙謹勅
근로하고 겸손하며 삼가하고 신칙하면 중용의 도에 이른다.
http://qindex.info/i.php?x=45095
 173 聆音察理
소리를 듣고 거둥을 살피니 비록 적은 일이라도 주의하여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45096
 174 鑑貌辨色
모양과 거둥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분별한다.
http://qindex.info/i.php?x=45097
 175 貽厥嘉猷
착한 일을 하여 자손에 좋은 것을 남기어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45098
 176 勉其祗植
착한 것을 자손에게 줄 것을 힘써야 하며 좋은 가정을 이루어라.
http://qindex.info/i.php?x=45099
 177 省躬譏誡
기룽과 경계함이 있는가 염려하여 몸을 살피라.
http://qindex.info/i.php?x=45100
 178 寵增抗極
총애가 더할수록 교만한 태도를 부리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45101
 179 殆辱近恥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멀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온다.
http://qindex.info/i.php?x=45102
 180 林皐幸卽
부귀할지라도 겸퇴하여 산간 수풀에서 사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http://qindex.info/i.php?x=45103
 181 兩疏見機
한나라의 소광과 소수는 기틀을 보고 상소한 후 고향으로 갔다.
http://qindex.info/i.php?x=45104
 182 解組誰逼
관의 끈을 풀고 즉 사직하고 돌아가니 누가 핍박하리요.
http://qindex.info/i.php?x=45105
 183 索居閑處
퇴직하여 한가한 살곳을 찾아 세상을 보냄.
http://qindex.info/i.php?x=45106
 184 沈默寂寥
세상에 나와 교제하는 데도 언행을 침착하게 가져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45107
 185 求古尋論
예를 찾아 의논하면 고인을 찾아 토론함이라.
http://qindex.info/i.php?x=45108
 186 散慮逍遙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자연속에 한가히 즐김을 말함.
http://qindex.info/i.php?x=45109
 187 欣奏累遣
기쁨은 아뢰고 더러움은 보내니.
http://qindex.info/i.php?x=45110
 188 慼謝歡招
마음 속의 슬픈 것은 없어지고 즐거움만 부른 듯이 오게 된다.
http://qindex.info/i.php?x=45111
 189 渠荷的歷
개천의 연꽃도 아름답고 향기 또한 잡아 볼만하다.
http://qindex.info/i.php?x=45112
 190 園莽抽條
동산의 풀은 땅 속의 양분으로 가지고 뻗고 크게 자란다.
http://qindex.info/i.php?x=45113
 191 枇杷晩翠
비파나무는 늦은 겨울날에도 그 빛이 푸르다.
http://qindex.info/i.php?x=45114
 192 梧桐早凋
오동나무는 가을이 되면 다른 나무보다 먼저 마른다.
http://qindex.info/i.php?x=45115
 193 陳根委翳
가을이 오면 오동뿐 아니라 고목의 뿌리는 시들어 마른다.
http://qindex.info/i.php?x=45116
 194 落葉飄颻
가을이 오면 낙엽이 펄펄 날리며 떨어진다.
http://qindex.info/i.php?x=45117
 195 遊鵾獨運
고니는 북해의 큰 봉새로서 홀로 바다위를 헤엄쳐 논다.
http://qindex.info/i.php?x=45118
 196 凌摩絳霄
강소란 붉은 색을 나타내는 저녁노을 해질무렵의 하나이다.
http://qindex.info/i.php?x=45119
 197 耽讀翫市
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항상 서점에서 탐독하였다.
http://qindex.info/i.php?x=45120
 198 寓目囊箱
왕총은 글을 한 번 읽으면 잊지 않아 주머니나 상자에 둠과 같다고 했다.
http://qindex.info/i.php?x=45121
 1980.05.26 Korea Situation Report Number 8
미국무부가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에 보낸 한국 상황 보고 제8호 - 반란 세력이 인민재판소를 설치하고 처형까지 했다는 이전의 보고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9374
 1980.05.26 Korea Situation Report Number 8
미국무부가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에 보낸 한국 상황 보고 제8호 - 반란 세력이 인민재판소를 설치하고 처형까지 했다는 이전의 보고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9377
 1980.05.26 Korean Situation Report, May 26
주한 미대사관에서 미국무부에 보낸 5월 26일자 한국 상황 보고 - 자치조직들이 만들어졌고, 강경 세력이 이전에 반납했던 무기를 되찾아 다시 무장했으며,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 인민재판과 처형 부분은 전날의 전문 내용을 반복하면서 '이러한 보고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참고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주의가 덧붙여져 있다.
http://qindex.info/i.php?x=9329
 1980.05.26 Korean Situation Report, May 26
주한 미대사관에서 미국무부에 보낸 5월 26일자 한국 상황 보고 - 자치조직들이 만들어졌고, 강경 세력이 이전에 반납했던 무기를 되찾아 다시 무장했으며,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인민재판과 처형 부분은 전날의 전문 내용을 반복하면서 '이러한 보고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참고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주의가 덧붙여져 있다.
http://qindex.info/i.php?x=9376
 1982.05 제5공화국 전사
▐ 1980년 5월 21일에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와 그 2년 뒤에 제5공화국에서 펴낸 전사의 내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광주□□는 전라도의 피해의식과 전라도 정치인 김대중의 구속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유언비어의 유포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26506
 199 易輶攸畏
군자는 가볍게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http://qindex.info/i.php?x=45122
 1998▐ 독도 밀약 핑계
독도 밀약에는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는데, 전두환은 헬기장을 만들었고 김영삼은 접안 시설을 만들어 이를 지키지 않았다. 김대중만 지켰다면 그의 다른 친일 행위들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게 낫다.
http://qindex.info/i.php?x=28986
 200 屬耳垣牆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과 같이 경솔히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
http://qindex.info/i.php?x=45123
 201 具膳飱飯
반찬을 갖추고 밥을 먹으니.
http://qindex.info/i.php?x=45124
 202 適口充腸
훌륭한 음식이 아니라도 입에 맞으면 배를 채운다.
http://qindex.info/i.php?x=45125
 2020.04.15 원래 평균값에 가까운 분포가 많다
한국 남자들 중에서 두 명씩 뽑아 키 차이를 구해보면 키 차이가 작을수록 분포는 많아진다. 예를 들면, 키 차이가 1cm 이내인 경우는 키 차이가 1cm에서 2cm사이인 경우보다 많다. ● 2020년 총선은 문재인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 종미기독(從米基督) 세력이 미운 짓을 한 결과다. 당연히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개표조작 논란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며 이것이 흐려졌다. 그 결과 종미기독 세력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http://qindex.info/i.php?x=9146
 2020.08¦ 둑만의 문제인가?
원칙적으로 물이 넘쳐도 둑은 터지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섬진강과 낙동강 모두 둑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섬진강의 경우 둑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물이 넘칠 정도로 수위가 높고 낙동강은 수위가 둑 높이에 비해 많이 낮아 둑이 터지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둑의 붕괴라는 공통점을 빼면 한 쪽은 범람 위기가 있었고 한 쪽은 없었다는 차이점이 드러난다.
http://qindex.info/i.php?x=10279
 2020.08¦ 보의 문제인가?
○ 낙동강 둑이 터진 것은 합천보의 물이 빨리 빠지지 못해 수위가 올라가 일어났으므로 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 둑을 만들 때에는 그 높이까지 물이 차도 터지지 않으라고 만든 것이다. 운전하다 타이어가 터져 사고가 나면 타이어 때문이지 자동차를 운전한 때문은 아니지 않는가?
http://qindex.info/i.php?x=10278
 2025.09.29 23:05 ✓ 120/56♡61
http://qindex.info/i.php?x=34282
 2025.10.03 00:12 ✓ 088/44♡43 잠깐 잠들었다 깬 직후
http://qindex.info/i.php?x=34301
 2025.10.03 00:18 ✓ 103/40♡39 잠시 후
http://qindex.info/i.php?x=34302
 2025.10.04 03:48 ✓ 121/60♡63
http://qindex.info/i.php?x=34321
 2025.10.05 04:00 ✓ 147/72♡59
http://qindex.info/i.php?x=34350
 2025.10.08 03:01 ✓ 135/58♡46
http://qindex.info/i.php?x=34361
 2025.10.09 04:00 ✓ 130/51♡48
http://qindex.info/i.php?x=34362
 2025.10.10 01:35 ✓ 125/50♡56
http://qindex.info/i.php?x=34364
 2025.10.12 17:13 ✓ 141/56♡43
http://qindex.info/i.php?x=5563
 2025.10.14 02:01 ✓ 111/50♡54
http://qindex.info/i.php?x=32928
 2025.10.26 19:00 ✓ 131/53♡47
http://qindex.info/i.php?x=34059
 2025.11.06 23:34 ✓ 118/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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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飽飫烹宰
배부를 떼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맛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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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饑厭糟糠
반대로 배고플 때에는 겨와 재강이라도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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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 親戚故舊
친은 동성지친이고 척은 이성지친이라, 고구는 옛 친구를 말한다.
http://qindex.info/i.php?x=45128
 206 老少異糧
늙은이와 젊은이의 식사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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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 妾御績紡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길쌈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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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侍巾帷房
유방에서 모시고 수건을 받드니 처첩의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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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紈扇圓潔
깁부채는 둥글고 조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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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銀燭煒煌
은 촛대의 촛불은 빛나서 휘황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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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 晝眠夕寐
낮에 낮잠자고 밤에 일찍 자니 한가한 사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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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 藍筍象床
푸른 대순과 코끼리 상이니 즉 한가한 사람의 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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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 弦歌酒讌
거문고를 타며 술과 노래로 잔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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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 接杯擧觴
작고 큰 술잔을 서로 받으며 즐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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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5 矯手頓足
손을 들고 발을 움직이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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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 悅豫且康
이상과 같이 마음 편히 즐기고 살면 단란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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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7 嫡後嗣續
적실 즉 장남은 뒤를 계승하여 대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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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祭祀蒸嘗
제사하되 겨울제사는 증이라하고 가을제사는 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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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稽顙再拜
이마를 조아려 선조에게 두번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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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悚懼恐惶
송구하고 공황하니 엄숙하고 공경함이 극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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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 牋牒簡要
글과 편지는 간략함을 요한다.
http://qindex.info/i.php?x=45144
 222 顧答審詳
편지의 회답도 용건을 잘 알수 있게 써야 한다.
http://qindex.info/i.php?x=45145
 223 骸垢想浴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하기를 생각하며.
http://qindex.info/i.php?x=45146
 224 執熱願凉
더우면 서늘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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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5 驢騾犢特
나귀와 노새와 송아지 즉 가축을 말함.
http://qindex.info/i.php?x=45148
 226 駭躍超驤
뛰고 달리며 노는 가축의 모습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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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 誅斬賊盜
역적과 도적을 베어 물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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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捕獲叛亡
배반하고 도망하는 자를 잡아 죄를 다스린다.
http://qindex.info/i.php?x=45151
 229 布射僚丸
한나라 여포는 활을 잘 쏘았고 의료는 탄자를 잘 던졌다.
http://qindex.info/i.php?x=45152
 230 嵇琴阮嘯
위나라 혜강은 거문고를 잘타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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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 恬筆倫紙
진국 봉념은 토끼털로 붓을 만들었고 후한 채윤은 종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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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 鈞巧任釣
위국 마균은 지남거를 만들고 전국 시대 임공자는 낚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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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 釋紛利俗
이상 팔인의 재주를 다하여 어지러움을 풀어 풍속에 이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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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4 竝皆佳妙
모두가 아름다우며 묘한 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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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 毛施淑姿
모는 오의 모타라는 여자이고 시는 월의 서시라는 여자인데 모두 절세 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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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工顰姸笑
이 두 여인의 웃는 모습이 곱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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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 年矢每催
세월이 화살같이 빠른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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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8 曦暉朗耀
태양 빛과 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어 만물에 혜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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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9 璇璣懸斡
선기는 천기를 보는 기구이고 높이 걸려 도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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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 晦魄環照
달이 고리와 같이 돌며 천지를 비치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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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 指薪修祐
불타는 나무와 같은 정열로 도리를 닦으면 복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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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 永綏吉劭
그리고 영구히 편안하고 길함이 높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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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3 矩步引領
걸음을 바르게 걷고 따라서 얼굴도 바르니 위의가 엄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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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 俯仰廊廟
항상 난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숙여 예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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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 束帶矜莊
의복을 단정케 함으로써 긍지를 갖는다.
http://qindex.info/i.php?x=45168
 246 徘徊瞻眺
같은 장소를 배회하며 두루보는 모양이다.
http://qindex.info/i.php?x=45169
 247 孤陋寡聞
배운 것이 고루하고 들은 것이 작다
http://qindex.info/i.php?x=45170
 248 愚蒙等誚
적고 어리석어 몽매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말함.
http://qindex.info/i.php?x=45171
 249 謂語助者
어조라 함은 한문의 조사 즉 다음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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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 焉哉乎也
언·재·호·야 네 글자는 즉 어조사이다.
http://qindex.info/i.php?x=45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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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gislation
In this _____ a provision known as the "Wolf Amendment" was passed to forbid NASA and U.S. companies from sharing technological advancements with the Chinese government.
http://qindex.info/i.php?x=15456
 map
지금은 두 지류 사이가 하나의 들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각기 별개의 들이었고 북쪽에 흘러오는 기계천을 따라 형성된 들을 음즙벌이라 하고 서쪽에서 흘러오는 칠평천을 따라 형성된 들을 비벌이라 했을 듯하다. 비벌은 안강이 되었고 음즙벌은 안강으로 합쳐졌다.
http://qindex.info/i.php?x=22305
 ② 加羅는 고령과 김해에만 있었다.
삼국사기가 이 두 나라를 보고 加耶를 낙동강 서쪽의 소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오인하면서 安耶에도 加耶를 붙여 阿那加耶라 했고 古寧에도 加耶를 붙여 古寧加耶라 했다. 삼국유사(1281)에 와서는 小伽耶와 星山(碧珎)伽耶가 추가되었다. 古寧과 星山 그리고 碧珎이란 지명이 신라시대에 만들어졌으니 그 지명이 붙은 加耶도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小伽耶는 가락국기에 나오는 6가야에 맞추기 위해 大加耶에 대응하는 이름을 붙여 끼운 듯하다.
http://qindex.info/i.php?x=14816
 ② 騶를 鄒牟로 보는 이유
한서(82)는 騶를 高句驪侯라 명시하였고 광개토왕릉비(414)도 鄒牟를 王이라 명시하였다. 여기서 侯는 王을 낮춰부르는 말이다. 한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아도 騶가 고구려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병력이 이탈한 것에 대해 신나라 내에서 騶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가장 먼저 나왔다거나 騶에게 죄를 물으면 부여와 예맥이 반란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거나 하는 부분이다. 騶가 일개 장수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http://qindex.info/i.php?x=12913
 ③ 騶를 鄒牟로 보는 이유
광개토왕릉비(414)에는 鄒牟王이 홀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를 디디고 서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고 제왕운기(1287)에는 東明이 승천하여 구름수레를 타고 돌아오지 않아 유리가 와서 왕위를 잇고 추모왕이 남긴 옥채찍을 묻어 무덤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모두 시신없이 鄒牟王을 장사지낸 듯한 이야기다. 한서(82)에 나오는 騶도 엄우가 유인하여 죽인 뒤 머리를 베어 장안으로 보냈으므로 고구려에서는 시신 없이 장사를 지냈을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12917
 ④ 騶를 鄒牟로 보는 이유
삼국사기(1145)가 한서(82), 삼국지(289) 그리고 후한서(445)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왕망에 의해 살해된 인물만 고구려후 騶에서 고구려 장수 延丕로 바꾸어놓았다. 延丕 이야기는 다른 기록으로 교차검증되지 않는다. 당연히 삼국사기의 기록을 왜곡된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http://qindex.info/i.php?x=12921
 ⑧ 앞칸 동벽
http://qindex.info/i.php?x=35281
 ⑧ 앞칸 동벽
http://qindex.info/i.php?x=35278
 ⑧ 앞칸 동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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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앞칸 동벽
http://qindex.info/i.php?x=35280
 ◾韓氏
潛夫論에 姓이 韓인 韓西가 衛滿에게 쫓겨났다고 되어 있으므로 韓으로 도망가서 韓王을 칭한 것이 아니라 韓王을 칭하면서 그곳이 韓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해야 어울린다. 또 아들과 친척 중에 조선에 남은 사람들은 쫓겨난 왕이 韓王을 칭하는 것을 보고 韓氏 성을 쓴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韓氏 성을 쓰고 있었다고 해야 앞뒤가 맞다. 쫓겨난 왕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따 쫓아낸 나라에 남은 아들과 친척이 성씨로 삼는다는 것은 어색하기 때문이다.
http://qindex.info/i.php?x=6756
 ❶ 김일성의 항일 운동은 부정할 수 없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항일 운동이나 토지 개혁과 같이 그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다. 전두환에 대해서도 동일한 현상이 존재한다. 그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잘 활용한 것은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윤석열처럼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많은 반발을 불러온다. 지금 한국 사회는 ᐥ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게ᐥ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17348
 ❷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다.
홍길동은 재상과 계집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조시대에는 부모의 어느 한 쪽이 종이면 그 자식도 종이 되었다. 그래서 홍길동은 친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홍길동이 이를 하소연하자 친부는 속으로 가엽게 여기면서도 사회가 다 그러니 거스르지 말라고 도리어 꾸짖는다. 지금 한국 사회도 그렇다. 전두환의 용인술이 좋았다고 다들 속으로 인정하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LA riot은 LA폭동이지만 riot in Kwangju는 광주폭동이라 부르지 못한다.
http://qindex.info/i.php?x=17356
 ❸ 용기있는 자에게만 사람이 따른다.
근대 이전에는 병력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그들은 전투의 경험도 없었고 싸울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이끄는 장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장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농민들 앞에 서서 가장 먼저 적과 부딪히는 일이었다. 가장 위험한 이 일을 두려워하여 장수가 농민들 뒤로 숨으면 그 군대는 바로 무너진다. 정치 지도자와 지지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윤석열처럼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옳은 말을 하는 자에게만 따르는 사람이 생긴다.
http://qindex.info/i.php?x=17347
 ❸ 위만의 건국과 단군설화는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聚黨千餘人 → 率徒三千 위만은 무리 천여명을 모아 망명했고 환웅은 무리 삼천명을 거느리고 내려왔다.┆渡 → 降 위만은 패수를 건넜고 환웅은 인간세상에 내려왔다.┆秦故空地 上下鄣 → 太伯山頂 神壇樹下 위만은 일단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고 환웅은 일단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었다.┆王之都王險 → 王之都王險 위만과 왕검 모두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
http://qindex.info/i.php?x=31424
 卷三 沙伐世家 晩得女王傳
晩得女王 曰,今用等國力 而必對以刀 爲其時 備驪蝸秘訣。 以使沕璃 建據彿壇 開發壘窟離禦也。 晩得女王(만득여왕)이 가로되, "지금은 等國(등나라)의 힘을 이용하지만 언젠가 등나라와 칼을 맞댈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하여 驪蝸(여와)로부터 전해 내려온 비결을 준비하도록 하라." 이에 沕璃(물리)로 하여금 據彿壇(거불단)을 짓고 壘窟離娥(누굴리아, nuclear)를 개발하게 하였다.
http://qindex.info/i.php?x=1399
 卷三 沙伐世家 儼親王傳
以等國之人海溢戰 國危,乃儼親王命 用討飜彈。 討飜彈之威力至大 方數百里 無生者也。 乃惻隱無腦退軍也。 等國(등나라)의 인해일전으로 나라가 위태해지자 마침내 儼親王(엄친왕)은 討飜彈(토번탄)을 사용하라고 명하였다. 토번탄의 힘은 매우 대단하여 사방 수 백 리에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마침내 惻隱無腦(측은무뇌)는 군대를 물리었다.
http://qindex.info/i.php?x=1386
 太守
472 帶方太守(張茂) ➔ 490² 廣陽太守→帶方太守(高達)┆朝鮮太守→廣陵太守(楊茂)┆清河太守(會邁) ➔ 495² 樂浪太守(慕遺)┆城陽太守(王茂)┆朝鮮太守(張塞) ▐ 중국의 지방관이다. 백제가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지 않거나 당시에는 사라져 없어진 지역이다. 받은 사람의 이름에서 백제의 왕성이나 토착 성씨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중국계 관료에게 주어진 듯하다.
http://qindex.info/i.php?x=22664
 姓·名
餘禮┆張茂┆姐瑾┆餘古┆餘歷┆餘固┆高達┆楊茂┆會邁┆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慕遺┆王茂┆張塞┆陳明 ▐ 餘씨는 백제의 왕성이고 沙씨는 부여의 호족이며 解禮는 웅진도독부 지심주의 현으로 편제되었던 지역이다.
http://qindex.info/i.php?x=25095
 姓·名 - 茂
465~471년에 茂는 유송에 사신으로 갔었고┆472년에 龍驤將軍 帶方太守 司馬 張茂는 북위에 개로왕의 사신으로 갔으며┆490²년에 建威將軍 朝鮮太守 兼 司馬 臣 楊茂 → 廣陵太守는 남제에 동성왕의 사신으로 갔고┆495²년에 城陽太守 兼 司馬 臣 王茂는 남제에 동성왕의 사신으로 갔다. ▐ 모두 동일인으로 보이는데 司馬와 茂만 같을 뿐, 장군과 태수 그리고 성씨가 모두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사신으로 파견될 때마다 만들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http://qindex.info/i.php?x=30431
 王·侯
472 弗斯侯(餘禮) ➔ 490¹ 面中王→都漢王(姐瑾)┆八中侯→阿錯王(餘古)┆邁盧王(餘歷)┆弗斯侯(餘固) ➔ 495¹ 邁羅王(沙法名)┆辟中王(贊首流)┆弗中侯(解禮昆)┆面中侯(木干那) ▐ 성씨로 보아 백제의 왕족이나 토착 세력에게 주어진 듯하다. 邁盧 또는 邁羅는 지금의 부여고 辟中은 지금의 김제다. 동성왕은 토착 세력인 王·侯와 중국계 관료인 太守를 번갈아 사신으로 보냈다.
http://qindex.info/i.php?x=22661
 王·侯 - 弗
472 弗斯侯(餘禮)┆490¹ 弗斯侯(餘固)┆495¹ 弗中侯(解禮昆)
http://qindex.info/i.php?x=30432
 秦(燕·齊) → 朝鮮 → 眞番
秦 말기에 燕과 齊의 유민이 반도로 흘러왔는데, 일부는 朝鮮에 정착하고 일부는 眞番으로 갔다. 朝鮮에 정착한 유민은 眞番으로 이주한 유민들이 阿殘이라 불렀는데, 滿朝鮮의 건국에 참여하였다. 眞番으로 이주한 유민은 眞番이 동쪽 땅을 떼어주어 살게 하였다. 滿朝鮮이 망할 무렵 역계경은 2천여호를 데리고 이곳으로 갔다. 훗날 眞番이 韓國으로 바뀌자 이곳은 辰韓 또는 秦韓으로 불리게 되었다.
http://qindex.info/i.php?x=32683
 蓮 - 百濟 金銅盤龍朱雀博山爐
그리고 이 향로의 연꽃은 용의 입과 연결되고 있다. 이 연화는 단순히 용의 입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동아시아의 신수(神獸)인 용의 입에서 피어나는 기(氣)이다. 결국 용과 연꽃이 상호 동격인 것이다. 용의 입에서 화생된 이 향로의 연꽃은 노신(爐身)에서 보듯 만개한 연꽃이다. 그런데 이 만개한 연꽃은 뚜껑 부위에서는 산(山)으로 화생(化生)하고 있다. 이 산은 신선세계의 중심인 산(山), 박산(博山)이다. 결국 박산이 연꽃에 의하여 화생된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35184
 遼河
at a confluence locally referred as the "Trident River" (三岔河), where it then adopted the new name Daliao River (大辽河, "Great Liao River") and drained into the Liaodong Bay just west of Yingkou.
http://qindex.info/i.php?x=15128
 鳳皇 - 百濟 金銅盤龍朱雀博山爐
봉황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며 노래는 묘음(妙音) 또는 오음(五音)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예로부터 음악과 관련된 동물이다. 이 향로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동반된 것, 다섯 원앙(鴛鴦)이 봉황을 응시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http://qindex.info/i.php?x=35183
 김대중협정을 변명하는 다람쥐 쳇바퀴 논리
국제법상 부득이한 협정이었다. ➔ 구지 한일공동수역의 모양을 괴상하게 만들어 독도를 넣어야 했냐? ➔ 김영삼 정부가 협상했으므로 김대중에게는 책임이 없다. ➔ 협정을 체결한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지 않느냐? ➔ 국제법상 부득이한 협정이었다.
http://qindex.info/i.php?x=26198
 문제 6. 사형미집행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사형제도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고 헌법재판소는 그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국민들도 대다수 사형 집행을 원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사형 집행을 하는 것이 국민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http://qindex.info/i.php?x=27793
 왜, 高句麗 그리고 한복(韓服) - 足結
はにわ에서 나타나는 족결은 이조의 풍속화에도 나타난다. 천년이 넘는 시차가 있으나 이조 이전에는 족결이 없었다는 정황이 없으므로 이조의 족결은 삼한 시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바지 저고리 문화가 왜로 건너갈 때 족결도 따라갔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11538
 왜, 高句麗 그리고 한복(韓服) - 고름
고구려의 벽화에는 허리띠로 윗도리를 묶을 뿐, 별도의 고름이 없다. 그러나 왜의 はにわ에는 고름처럼 묶는 부분이 있어 이조의 고름과 통하는 면이 있다. 바지 저고리 문화가 왜로 건너갈 때의 한국 저고리도 はにわ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조 한복의 고름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양직공도에 나오는 신라 사신이 입은 옷에 고름이 없는 것은 일반인의 옷이 아니라 예복이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http://qindex.info/i.php?x=11537
 전임 정부 탓이 어려운 이유
김대중이 독도영유권을 훼손하는 어업협정을 맺으러 갈 때, 기존에 일왕이라 칭하던 호칭을 천황으로 바꾸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한국 정부가 하고 일본에는 문제삼지 않기로 하는 등 다른 친일적인 행위를 동반하였기 때문에, 전임 정부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http://qindex.info/i.php?x=26200
 주요 못
○ 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는 단밀의 북쪽에 大堤池가 있었다고 하는데, 방향으로 보아 삼분에서 시작된 물길 막은 것으로 보인다. 효제리에는 大堤마을이란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 노연 서쪽의 墨溪(미끼)마을 앞에는 미끼못의 둑이 있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이는 商山誌(1617)에 나오는 墨池 또는 未溪堤와 연결될 수 있다. ○ 용기의 동쪽에도 1957년까지 돌못이 있었는데, 지금도 제방의 흔적이 남아 있다.
http://qindex.info/i.php?x=26665
 한국인들이 밥을 많이 먹은 이유...
기생충 감염이 사라진 것은 인분 사용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달리 농경지가 적다. 그래서 좁은 땅에서 많은 생산을 얻기 위해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인분을 사용하면 기생충에 감염되기 쉽다. 그리고 기생충에 감염되면 양분을 많이 뺏겨 밥을 많이 먹게 된다. 그렇다면 인분 사용 > 기생충 감염 > 식사량 증가라는 인과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들은 청결해서 덜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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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강변에 살고 싶습니까?
한 쪽은 건기에 강이 바닥을 드러내며 재래식 보 주변에만 물이 조금 괴어 있다가 우기가 되면 물이 금새 차올라 둑을 언제 넘을지 몰라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한 쪽은 사시사철 물이 찰랑차랑 차 있고 우기에도 물 높이가 둑보다 여유있게 낮아 범람의 걱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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