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半島의 古代 地名 > 車竹以南 - 伊 (함지땅) > _ 옛 지명 伊山은 烽火山 > 所伊山┆영주┆烽燧

世宗實錄地理志
 
1454 世宗實錄地理志 榮川郡
烽火一處 所伊山在郡東 東準禮安 祿轉山 西準基川 望前山
38500#38501 SBLNGS CHLDRN 38501
 
1530 新增東國輿地勝覽 榮川郡
烽山 在郡東十五里┆城內山烽燧 在郡北十四里 東應安東府奈城縣堂北山 西應豐基郡望前山 ▐ 신증동국여지승람의 烽山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봉화가 있었다는 所伊山처럼 영천군의 동쪽에 있고 뜻도 봉화가 있는 산이라 세종실록지리지의 所伊山일 가능성이 있다.
38500#38569 SBLNGS CHLDRN 38569
 
1574 伊山書院
▐ 1574년에 伊山이라 사액된 伊山書院은 1575년에 陶山이라 사액된 陶山書院처럼 伊山이란 지명을 따라 붙인 이름일 것이다.
38500#38574 SBLNGS CHLDRN 38574
 
1575 陶山書院
陶山은 예안 고을의 9곡 가운데 제4곡과 제5곡 사이에 위치하는 산으로 예전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다하여 퇴계 선생이 陶山으로 명명하고 이곳에 도산서당을 열어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38500#38575 SBLNGS CHLDRN 38575
 
1856~1861 東輿圖
▐ 동여도의 烽山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영천군의 동쪽에 있고 동쪽으로 祿轉山과 연결되며 서쪽으로 望前山과 연결되었다는 所伊山으로 어울린다. 그렇다면 烽山의 인근에 있는 伊山書院이 이름을 따간 지명 伊山은 所伊山의 줄임말일 가능성이 생긴다.
38500#38570 SBLNGS CHLDRN 38570
 
...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1861~1866 大東地志 榮川
山伊 東 初五 終十┆烽山 東十五里┆烽燧 昌八來山 東三十里 城內山 北十四里┆伊山書院 宣祖癸酉建 甲戌賜額
38500#38571 SBLNGS CHLDRN 38571
 
봉우재
장수고개 마을 뒤편으로 높다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봉우리를 봉우재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왜적의 침입이나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 이 산봉우리에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워 알리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여 봉우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영천군지에 의하면, 이 산을 城內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38500#38572 SBLNGS CHLDRN 38572
 
이산면
조선중기 영천군 산이리, 어화곡리, 말암리 임지리로 구성┆1914년 산이면, 어화면, 말암면 3개면이 병합 영주군 이산면이 됨
38500#38573 SBLNGS CHLDRN 385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