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2군사령부는 재진입 작전계획을 짰다. 23일 진종채 2군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충정작전'이라는 이름의 이 계획을 건의했다. 이때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비롯해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참석했다. 그러나 24일 오전 2시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작전은 미국의 요청으로 국방부 장관이 지침을 내려 25일 오전 2시 이후로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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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3 2군사령부 문서
▶저 손글씨는 기록이 작성된 이후 써넣어진 것이다. 각하는 대통령을 칭하는 말이고 광주□□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으므로 저 손글씨는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이후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음날 오전 2시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작전은 미국의 요청으로 국방부 장관이 지침을 내려 다다음날 오전 2시 이후로 연기하였다. 작전의 최종 결정권이 전두환에게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226#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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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7
1980년 미대사관이 분석한 광주□□
It is probable that regionalism is playing significant roll in the intensity of the riot in Kwangju.
지역주의가 광주 폭동을 격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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