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369 任那 > 영산·복강 동조현상 > 0529~0660 きゅしゅう혈통 모계사회

영산강의 지류인 문평천 주변에는 전방후원분이 먼저 나타나고 뒤이어 모계사회라 추정할 만한 고고학적 양상이 나타난다. 지배 계층의 무덤에서 여성의 인골이 금동관이나 금동신발과 같은 위세품과 함께 출토되고 또 그들의 모계 혈통이 같기 때문이다. 또 일본 구주인과 동일한 유전적 특징도 나타나고 있다.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전남 나주 다시면
전남 나주 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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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의 가흥리, 복암리 그리고 영동리
나주의 가흥리, 복암리 그리고 영동리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강이 영산강이고 위에서 아래로 흘러 영산강으로 들어가는 개천이 문평천이다. ○ 가운데 '조사지역'이라 되어있는 붉은 점이 450년경에 축조된 전방후원분이다. 그 오른쪽 푸른 삼각형이 복암리 고분군이고 또 그 오른쪽의 산비탈에 정촌고분이 있다. 영동리 고분군은 전방후원분의 왼쪽 위의 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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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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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450년경에 만들어진 전방후원분으로 내부는 구덩앞트기식 돌덧널이다. 여기서 1m 정도의 큰쇠칼과 함께 쇠창, 쇠도끼 그리고 살포가 출토되었다. 무덤을 둘러싼 도랑에서는 원통형 토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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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군
나주 복암리 고분군
왼쪽의 네모꼴 봉분이 3호분인데 이곳의 96석실은 백제식 굴식 돌방이다. 이 돌방에서 독널 4기가 나왔는데 각각 2구, 2구, 3구 그리고 1구의 인골이 들어 있었다. 세 번째 독널에서 나온 두 편의 인골 조각은 각각 남자와 여자의 것으로 모계 유전자는 같았고 네 번째 독널 아래에서는 금동 신발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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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군
네모꼴의 3호분은 7종 41기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널 22기, 구덩식돌덧널 3기, 굴식돌방 11기, 앞트기식돌덧널 1기, 앞트기식돌방 2기, 돌덧널독널 1기, 나무널 1기다. 만들어진 때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맨 아래의 독널들은 3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독널과 다른 매장방식이 섞인 가운데는 5~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맨 위의 돌방들은 6~7세기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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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호석실에는 세 차례 나무널이 안치된 흔적이 있다. 인골이 2구 나왔는데 모두 40대 여성으로 첫 번째와 세 번째 묻힌 사람들이었다. 이 세 번째 흔적은 600년을 전후해서 묻힌 것으로 판단되는데, 금동신발과 함께 금동관의 파편이 함께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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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기의 나무널, 6기의 독널, 4기의 돌덧널 그리고 3기의 돌방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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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동리 고분군
나주 영동리 고분군
인골은 모두 23구가 출토되었다. 인골은 눈, 코 그리고 입이 가운데로 몰려 있어 일본 구주 사람의 특징과 같았다. mtDNA를 분석한 결과 일본 미생시대 인골이나 백제, 신라, 이조 그리고 현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고 현대 일본인과 거리가 가장 가까웠다. 또 1호 돌덧널의 남녀와 2호 돌방의 여자가 모계가 같고 3호 돌방의 남자와 4-1호 돌방의 여자가 모계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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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동리 고분군
원래 8기 이상이 있었으나 3기만 남아있다. 내부에는 독널 26기, 돌방 8기, 돌덧널 6기가 확인되었다. 3세기의 독널 묘역에 5세기말에서 6세기 전반 사이의 초기 돌방이 만들어지고 잇따라 백제 돌방과 돌덧널이 7세기까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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