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 分割馬韓八國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二郡遂滅韓
•
帶方郡
진번군은 이내 폐지되고 낙랑군에 합쳐졌는데, 이후 진번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편, 전한의 낙랑 25현은 영동 7현이 갈라져 나가 후한의 낙랑 18성이 되었고 이 중에서 7성이 갈라져 나와 서진의 대방 7현이 되었다. 이 대방 7현이 진번이 폐지될 때 낙랑으로 합쳐진 진번의 7현으로 추정된다. 대방 7현은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로 추정되므로 낙랑에 합쳐지지 않은 진번 8현도 임진강 남쪽에 그만한 크기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차현까지가 유력하다.
571#6536
SIBLINGS
CHILDREN
6536
•
0020~0023 魏略(265±)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군에서는 염사착의 공과 의를 표창하고, 관직과 밭 그리고 집을 주었다. 그의 자손은 여러 대를 지나 125년에 이르러서는 그로 인하여 부역을 면제받았다.
▐ 진한을 대방에 인접한 한국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571#14611
SIBLINGS
CHILDREN
14611
•
0238~0245
漢 왕조를 이은 曹魏는 238년에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을 토벌하고 낙랑군과 대방군에 대한 통치도 회복하였다. 이어 위는 244년과 245년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고 낙랑군과 대방군도 고려에 복속했던 濊를 침공하여 다시 복종을 받아냈다.
245년 이후 낙랑이 한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자 한인들이 대방을 공격하였고 낙랑과 대방은 한국을 토벌하였다.
위의 유주자사가 낙랑태수 및 대방태수와 더불어 고구려를 칠때 백제가 낙랑을 침략하였다.
571#14610
SIBLINGS
CHILDREN
14610
•
0246.08 「三國誤記」 百濟 ✘
魏幽州刺史毋丘儉 與樂浪大守劉茂朔方大守王遵 伐髙句麗 王乗虛遣左將真忠襲取樂浪邊民 茂聞之怒 王恐見侵討還其民口
▐ 이 기록은 다음 기록들을 잘못 종합한 결과인 듯하다.
① 244 句麗가 수차례 침입하자 毌丘儉이 토벌하였다.
② 245 濊가 句麗에 복속하자 樂浪太守 劉茂와 帶方太守 弓遵이 정벌하였다.
③ 245 馬韓八國 문제로 韓이 帶方郡을 공격하니 太守 弓遵과 樂浪太守 劉茂가 이들을 정벌하였다.
④ 304 몰래 군사를 보내 樂浪의 서쪽 縣을 빼앗았다.
571#34937
SIBLINGS
CHILDREN
COMMENT
34937
•
0289 三國志 요약
○ 韓在帶方之南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 馬韓在西 마한은 서쪽에 있다.
○ 辰韓在馬韓之東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 濊南與辰韓 예는 남쪽으로 진한에 접해 있다.
○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₁ 대방군에서 왜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국₁을 거쳐간다.
▐ 염사착 이야기와 기리영 사건에 나오는 진한은 삼국지의 진한에 대한 설명과 맞지 않고 마한과 어울린다.
571#9945
SIBLINGS
CHILDREN
9945
•
韓八國
삼국지(289)에는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마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진번군 15개 현 가운데 7현은 낙랑군에 합쳐졌다 나중에 대방군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8개 현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이 진번 8현이 훗날 위나라가 낙랑에 넣으려한 마한 8국이 아닐까?
571#5860
SIBLINGS
CHILDREN
COMMENT
58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