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番
전국시대에 燕의 동쪽에 朝鮮이 있었고 朝鮮의 남쪽에 眞番이 있었다. -108년에 漢이 滿朝鮮을 멸망시키면서 眞番에도 군을 설치하였는데, 15현이 있었다. 그 중 含資, 帶方, 海冥, 列口, 長岑, 昭明 그리고 提奚 7현은 -82년에 眞番郡이 폐지될 때 樂浪郡에 합쳐졌다가 196~220년에 帶方郡으로 분리되었다.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다. 나머지 8현은 245년에 이르러 辰韓 8국이 되어 있었는데, 임진강과 차령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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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¹·三韓¹ = 馬韓+辰韓+弁韓
秦漢교체기에 燕 등지의 유민이 계속 朝鮮으로 흘러왔다. 일부는 眞番으로 갔고 그 일부는 다시 辰國으로 갔다. 朝鮮에 온 유민은 滿왕조를 세웠으나 漢이 멸망시키고 樂浪·臨屯·玄菟·眞番의 군을 설치하였다. 이후 '원래 朝鮮의 왕은 기자의 후예 韓씨였는데 滿에게 쫓겨나자 바다로 도망가 韓王을 칭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前·後漢의 교체기에는 옛 眞番 지역에서 韓이 나타난다. 韓의 중심은 차령과 노령 사이였고 眞番의 남부와 辰國 등을 아우르며 三韓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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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蓋單山領
東西分水界 중에서 고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부분은 개마대산에서 철령까지다. 그 중 蓋馬大山에서 황초령까지는 압록강 유역의 동변인데 고구려와 옥저의 경계였다. 황초령에서 철령까지는 대동강과 임진강 유역의 동변을 이은 것인데 조선과 예의 경계였으며 單單大領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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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志(289) 동이 설명 시점
공손연까지 3대가 계속 요동을 차지하자 천자는 그 지역을 포기하고 해외를 맡겼다. 그 결과 동이와의 관계가 끊어져 중국과 통하지 않게 되었다. 경초 연간에 크게 군대를 일으켜 연을 죽이고 또 몰래 바다를 건너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되찾았다. 그러자 해외가 안정되어 동이들이 굴복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매우 먼 지방까지 쫓으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으로 큰 바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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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289)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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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書(82) -0075
▐ 고구려는 혼강(渾江) 유역에 있었고 서개마는 압록강 상류에서 옥저로 넘어가는 개마대산의 서편에 있었으며 강계는 압록강에서 예로 넘어가는 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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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樂浪, 濊 그리고 單單大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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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289)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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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東夷와 漢四郡. 이 시기에 형성된 부족 또는 한군현의 단위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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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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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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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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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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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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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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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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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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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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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 고대사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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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5 三國志(289)
▐ 현도군이 옥저에서 후퇴할 때 창려군 설치 때 이용되었을 길이나 동천왕이 도주할 때 이용했을 길을 따라 이루어졌을 듯하다. 각각 상은태와 서개마를 지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서개마 그리고 상은태의 중앙에 있는 집안에는 설치할 여건이 되지 않아, 또는 잠시 설치했다가, 요동군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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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2 @북유말갈(北有靺鞨) @동유낙랑(東有樂浪)
철원은 교통의 요지고 넓은 평야가 있어 한나라가 현을 설치할 때 이곳을 빠뜨리지 않았을 듯하다. 진번군과 임둔군을 폐지할 때, 이곳은 춘천과 함께 한나라의 군현에서 빠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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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7 @옥저성 @沃沮城
▐ 옥저성이 있었던 곳으로는 지금의 길주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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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7 ◾개마대산 동쪽에서 개마대산 서쪽을 통치?
이 어색함은 현도군의 초기 치성이 있던 옥저성을 황초령 아래로 설정해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는 이내 옥저를 현도군에서 분리하여 낙랑군 동부도위로 소속시키고 현도군 치소는 개마대산을 넘고 압록강 유역을 지나 멀리 요하 유역으로 옮겼다. 대동강에 낙랑군을 설치한 한나라가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영흥만에 임둔군을 설치한 뒤 해안을 따라 올라가 이듬해에 길주에 현도군을 설치하고 압록강 유역을 이 현도군에 소속시킨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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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 樂浪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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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 ~ -0082 茂陵書
동이가 황초령 아래에 있었고 진번군이 낙랑군 남쪽에 있었으며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동이보다 1500리 더 먼 곳에 있었다면, 삽현의 위치로는 한성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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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 ~ -0082 茂陵書
창해군은 황초령을 넘어 한나라와 연결되며 설치되었으므로 치소는 황초령 아래에 있었을 듯하다. 임둔군은 창해군을 재건하는 의미를 지녔으므로 임둔군의 치소 또한 창해군의 치소를 재건했을 듯하다. 동이가 황초령 아래에 있었고 진번군이 낙랑군 남쪽에 있었으며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동이보다 1500리 더 먼 곳에 있었다면, 삽현의 위치로는 한성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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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 茂陵書
임둔군의 치소 동이현이 영흥만에 있었고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한강 하류에 있었다면 무릉서의 이야기처럼 장안에서의 거리가 1500리 차이날 수 있다. 단, 동이에 이르는 경로가 낙랑을 거쳐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가는 경로일 경우다. 임둔군을 설치할 때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갔지만 한나라와 교통할 때는 황초령을 넘어 집안을 거쳐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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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 臨屯郡
임둔군은 과거 창해군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현도군은 이 임둔군보다 한 해 늦게 설치되었는데, 이는 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의 영향력이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올라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갔다면 집안에 군을 먼저 설치하였을 것이다. 한나라는 예에 임둔군을 설치하고 이듬해에 마운령을 넘어 옥저에 현도군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요동군과 옥저 사이의 맥은 이 현도군에 소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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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6 맥고려의 한나라 변경 잠식
0014 高句麗縣 ┆ 0026 蓋馬國(西蓋馬縣) ┆ 0026 句茶國(上殷台縣) ┆ 0032 崔理樂浪(東暆縣) ┆ 0037 東有樂浪(옛 臨屯郡縣) ┆ 0056 東沃沮(夫租縣) ▐ 12년에 추모왕이 중국에 의해 살해되자 맥고려는 현도군의 고구려, 서개마 그리고 상은태 세 개 현을 모두 차지하였고 30년에 동부도위가 폐지되자 그에 속했던 동이, 부조 등도 침공하여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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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8~0246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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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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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志(289) ⤵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서문에는 245년에 고려 동천왕을 쫓아 숙신까지 간 후에 '드디어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삼국지에 기록된 동이는 245년경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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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志(289) 買溝
▐ 동천왕은 옥저와 북옥저를 거쳐 숙신에 이르는 경로로 도주하였고 북옥저를 置溝婁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므로 買溝는 置溝婁의 다른 표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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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三國志(289)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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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19 ◾真番 → 韓國┆辰國 → 辰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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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眞番
眞番은 사기(-91)에서 朝鮮과 묶여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朝鮮에 접한 나라다. 朝鮮은 사기에 燕의 동쪽에 접했다고 하고 삼국지(289)에는 高句麗의 남쪽이자 濊의 서쪽에 있다고 하므로, 朝鮮에 접한 眞番이 있을 곳은 그 남쪽 밖에 없다. 漢은 滿朝鮮을 멸망시키고 眞番에 군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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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동이 @東夷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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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0289 魏略·三國志 0245 三國誤記
▐ 한나라는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 眞番, 임둔 그리고 현도군을 설치했다가 -82년에 임둔과 함께 眞番을 폐지하고 15현 중 7현만 낙랑에 소속시킨 바 있다. 그 후 204~220년에 공손씨가 낙랑의 둔유현 이남 7개 현을 떼어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이 대방 7현은 낙랑에 편입된 眞番 7현으로 보인다. 眞番의 나머지 8현은 245년의 분쟁에 나오는 馬韓 8국과 연결지을 수 있다. 임진강에서 차현까지의 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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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三國志 요약
○ 韓在帶方之南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 馬韓在西 마한은 서쪽에 있다. ○ 辰韓在馬韓之東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 濊南與辰韓 예는 남쪽으로 진한에 접해 있다. ○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₁ 대방군에서 왜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국₁을 거쳐간다. ▐ 염사착 이야기와 기리영 사건에 나오는 진한은 삼국지의 진한에 대한 설명과 맞지 않고 마한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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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5.05 ◾樂浪²┆靺鞨²
한나라는 -108년에 臨屯郡을 설치했다가 -82년에 폐지하고 15현 중 7현만 樂浪郡에 소속시킨 바 있다. 樂浪²과 靺鞨²은 이때 빠진 8현의 일부일 수 있다. 樂浪²은 그 중심으로서 靺鞨²을 사주하여 백제를 침공하게 하고 강릉 즈음에 있었던 소국을 사주하여 신라를 침공하게 하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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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0- 무릉서(茂陵書)
▐ 임둔군의 치소 동이현이 영흥만에 있었고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한강 하류에 있었다면 무릉서의 이야기처럼 장안에서의 거리가 1500리 차이날 수 있다. 단, 동이에 이르는 경로가 낙랑을 거쳐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가는 경로일 경우다. 임둔군을 설치할 때는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갔지만 한나라와 교통할 때는 황초령을 넘어 집안을 거쳐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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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3~0314 낙랑과 대방 흡수
낙랑과 대방을 병합하고 도읍을 낙랑으로 옮기면서 고려의 문화는 낙랑과 대방에 남아있던 중국 문화로 중심이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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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7 任那의 두 번째 의미
任那¹ = 南加羅 ┆ 任那² = 백제와 신라를 제외한 한국의 소국 통칭 ┆ 任那³ = 加羅 ▐ 진번군의 남쪽 경계가 차현으로 추정되는데, 이 차현은 임나²의 북쪽 경계로도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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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고구려는 맥이고 낙랑국은 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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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한사군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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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帶方郡
진번군은 이내 폐지되고 낙랑군에 합쳐졌는데, 이후 진번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편, 전한의 낙랑 25현은 영동 7현이 갈라져 나가 후한의 낙랑 18성이 되었고 이 중에서 7성이 갈라져 나와 서진의 대방 7현이 되었다. 이 대방 7현이 진번이 폐지될 때 낙랑으로 합쳐진 진번의 7현으로 추정된다. 대방 7현은 자비령에서 임진강 사이로 추정되므로 낙랑에 합쳐지지 않은 진번 8현도 임진강 남쪽에 그만한 크기의 지역이 되어야 한다. 차현까지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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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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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樂浪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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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八國
삼국지(289)에는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마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진번군 15개 현 가운데 7현은 낙랑군에 합쳐졌다 나중에 대방군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8개 현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이 진번 8현이 훗날 위나라가 낙랑에 넣으려한 마한 8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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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와 불이
예는 원래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 대동강을 거쳐 중국과 교류하였는데 위만 조선에 의해 이 길이 막히자 황초령을 넘어 압록강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였고 이때 잠시 예에 창해군이 설치되기도 했다.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옛 창해군 지역에 임둔군을 설치할 때 이 길을 고려하여 치소를 황초령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압록강을 지나는 길이 맥에 의해 막히자 다시 단단대령 남쪽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동부도위의 치소도 영흥만 남쪽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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