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 연대기 > 290년에서 390년 사이 > 0342 모용황의 고구려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0342 위서(0554)
모용원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남쪽 길로 침입하여 목저에서 전투를 벌여 쇠(釗, 고국원왕)의 군대를 대파시키고 승승장구하여 드디어 丸都까지 침입하니 쇠는 혼자서 도망쳤다. 원진이 쇠의 아버지(미천왕) 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싣고 아울러 그의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진귀한 보화와 남녀 5만여명을 약탈하고 그의 궁실을 불살라 丸都城을 파괴한 뒤 귀환하였다.
1858 COMMENT
 
0342 (<0343) 양서(636)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1857 COMMENT
 
0342 수서(636)
위궁의 현손의 아들은 소열제(昭列帝, 고국원왕)라고 하는데, 모용씨에게 격파되었다. 마침내 丸都에 들어가 그의 궁실을 불태우고 크게 약탈한 뒤 돌아왔다. 소열제는 뒤에 백제에게 피살되었다.
1862 COMMENT
 
0342-11 삼국사기(1145) 고구려
모용황이 병력 4만을 거느리고 남도로 왔다. 모용한과 모용패는 장사 왕우 등 병력 1만 5천을 거느리고 북도로 왔다. 고려왕은 혼자 말을 타고 달아나 단웅곡으로 들어갔다. 연나라 장군 모여니가 고려왕의 어머니 주씨와 왕비를 추격하여 사로잡아 돌아갔다. 미천왕의 무덤을 파서 그 시신을 수레에 싣고 창고 안에 있던 많은 보물을 약탈하였다. 또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고 궁궐을 불태운 뒤 환도성을 헐어버리고 돌아갔다.
1825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