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半島의 古代 地名 > 참고자료 > 里와 方

나라의 크기를 말할 때, 東西二千里 南北一千里처럼 동서와 남북의 길이로 말하는데, 그 두 길이가 같을 경우, 東西四千里 南北四千里라 하지 않고 方四千里라 하였다.
 
Pet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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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4 史記(-91)
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南有嘑沱易水●地方二千餘里帯甲數十萬車六百乗騎六千匹粟支數年南有碣石鴈門之饒北有棗栗之利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此所謂天府者也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남쪽으로는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에 갑옷을 두른 병사가 수십 만, 전차가 6백 승, 전투마가 6천 필, 비축된 식량은 몇 년을 먹을 수 있습니다.
14101#14207 SIBLINGS CHILDREN 14207
 
-0334
이 기록과 사기의 다른 기록을 종합하면 위만 조선이 천산 산맥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14101#14209 SIBLINGS CHILDREN 14209
 
0289 三國志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辰韓者 古之辰國也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경하니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세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14101#14103 SIBLINGS CHILDREN 14103
 
0289¦
이 기록은 대방군에서 구야 한국까지의 거리가 7천리라는 삼국지의 다른 기록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14101#14210 SIBLINGS CHILDREN 14210
 
0435 위서(554)
遼東南一千餘里 東至柵城 南至小海 北至舊夫餘 民戶參倍於前魏時 ●其地東西二千里 南北一千餘里 요동에서 남쪽으로 1천여리 떨어진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책성, 남쪽으로는 소해에 이르고, 북쪽은 예전의 부여에 이른다. 민호의 수는 전 위나라 때보다 3배가 많았다. 그 나라는 동서가 2천여리이며 남북은 1천여리나 된다.
14101#14208 SIBLINGS CHILDREN 14208
 
0659 북사
夷人不知里數但計以日 오랑캐들은 이수를 알지 못하여 오로지 날수로 헤아린다.
14101#14215 SIBLINGS CHILDREN 14215
 
0801 통전(通典)
馬訾水則移反一名鴨綠水 水源出東北靺鞨白山 水色似鴨頭 故俗名之 去遼東五百里 經國內城南 又西與一水合 即鹽難水也 二水合流 西南至安平城 入海 高麗之中 此水最大 波瀾清澈 所經津濟 皆貯大船 其國恃此以為天塹 水闊三百步 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
14101#14275 SIBLINGS CHILDREN 14275
 
0801 통전(通典)
마자수는 일명 압록수이다. 물이 동북 말갈의 백산에서 나온다. 요동에서 5백리 떨어져 있다. 국내성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만나 두 물이 합하여 서남으로 흘러 안평성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강의 너비가 3백보이고, 평양성 서북 450리에 있다.
14101#14276 SIBLINGS CHILDREN 14276
 
0945 구당서
總章元年 命勣為遼東道行軍總管 率兵二萬略地至鴨綠水 賊遣其弟來拒戰 勣縱兵擊敗之 追奔●二百里 至於平壤城 이세적은 668년에 요동도행군총관이 되어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압록수에 이르니 고려왕이 동생을 보내어 항거하였으나 병사를 풀어 격패시키고 2백리를 추격하여 평양성에 이르렀다.
14101#14274 SIBLINGS CHILDREN 14274
 
0945¦
0945¦
요동에서 압록강까지의 거리는 압록강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따라서 그 거리가 각각 500리와 450리였다는 통전(801)의 설명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구당서(945)에는 당군이 압록강에서 고려군을 격파하고 200리를 추격하여 평양성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어 통전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당서의 설명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통전이 말하는 里와 구당서가 말하는 里가 달랐을 수도 있다. 어쨋든 里는 동일 사서 내에서만 비교하는 것이 안전하다.
14101#14277 SIBLINGS CHILDREN 1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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