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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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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三國史記(1145) 朱蒙
北扶餘의 朱蒙이 난을 피하여 卒本扶餘로 와 扶餘왕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沸流와 溫祚 두 아들을 낳았는데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가서 미추성과 위례성에 각각 나라를 세웠다. 나중에 합쳐서 百濟라고 불렀다.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33053#32176
SIBLINGS
CHILDREN
3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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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三國史記(1145) 優台
北扶餘왕 觧扶婁의 서자인 優台는 卒夲 사람 召西奴에게 장가들어 沸流와 温祚 두 아들을 낳았다. 우태가 죽고 나서 소서노는 扶餘에서 도망온 朱蒙에게 시집을 가서 高句麗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는
遂與弟率黨類 渡浿帶二水 至彌鄒忽以居之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33053#32181
SIB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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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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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沸流와 温祚의 이동 경로 1
① 遂與弟率黨類 渡浿帶二水 至彌鄒忽以居之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
②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이 두 기록으로 보아 沸流와 温祚는 일단 弥鄒城에 정착했던 듯하다.
당시 浿水와 帶水는 각각 樂浪郡과 南部都尉의 영역이었으므로 이곳에는 물길로 이르렀을 것이다.
국호에 濟가 들어 있어 이를 암시한다.
33053#3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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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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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솔까역사」 百濟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濵 十臣諌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髙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冝乎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 沸流欲居於海濵 分其民 歸弥鄒(忽→)城以居之
비류는 바닷가에 살고자 하여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성으로 돌아가 살았다.
┆温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10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33053#3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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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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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8 ◾至漢山 登負兒嶽
至漢山 登負兒嶽은 温祚가 慰禮城에 도읍한 후 순행하다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漢山은 남한산이고 負兒嶽은 북한산 인수봉이므로 至漢山 登負兒嶽은 남한산에 이르러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되어 모순된다.
漢山을 훗날 신라의 北漢山州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모순이 해소되나 그것은 고려에서 나와 한국으로 올 때의 이야기에서나 필요했던 구절로, 慰禮城에서 나와 순행하는 이야기에서라면 필요없는 구절이다.
3305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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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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