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와 신라 지역에서 3세기 말부터 6세기 전엽까지의 고분에서 순장이 확인된다. 출현은 대형 목곽묘가 만들어지던 시기와 일치하며 소멸은 가라가 망할 때 즈음이었다.
순장 고분은 초원에서 많이 발견되지만 초원에서 이들 지역으로 주민이 이동해 온 흔적이 없다.
또 기록상으로는 부여, 고려 그리고 왜에도 순장이 있었다.
따라서 가라와 신라의 순장은 문화의 전파나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2~3백여년 유행하다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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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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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7↦(0003) 日本書紀(720)
황후 일엽초원명이 죽었다. 야견숙녜가 사자를 보내어 출운국의 토부들을 시켜 진흙으로 인마 및 각종 물건의 형체를 만들어 천황에게 헌상하며 “이후로는 이 토물을 산 사람을 대신하여 능묘에 세워서 후세의 법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를 식륜(埴輪 はにわ)이라 한다. 영을 내려 “앞으로 능묘에는 반드시 이 토물을 세울 것이며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 삼국지에는 247년까지도 순장이 있었다고 하므로 이 사건은 그 이후의 일이다.
993#1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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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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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8 三國史記(1145)
(고려) 가을 9월에 왕이 서거하였다. 시원에 장사지냈다. 이름을 동천왕이라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음이 없었다. 가까운 신하들이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왕이 예가 아니라 하여 이를 금하였다. 장례일에 이르러 무덤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잡목을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드디어 그 땅의 이름을 시원이라 하였다.
993#4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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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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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대성동 고분군
3세기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29호분에서 1명의 순장이 확인되었다. 이때는 대형 목곽묘가 축조되고 껴묻거리가 많아지던 시기였다. 이후 순장의 규모는 여러 명으로 늘어났다. 5세기 후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혈식석곽묘에서 1명의 순장이 확인된 것이 마지막이다.
993#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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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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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7~0534 선비 왕조
가라와 신라에 금동관, 적석목곽분, 순장 등이 성행하던 시기에 초원길 끝에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용 선비는 前燕(0337~0370), 後燕(0384~0407) 그리고 北燕(0407~0436)으로 이어가며 요서 지역을 차지하였고 탁발 선비는 北魏(0386~0534)를 세워 모용 선비에 이어 요서 지역을 점유하였다.
993#1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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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고령 지산동 44호분
고령 지산동 44호분은 5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방무덤인데, 역사기록과는 일본서기(720)에 나오는 반파에 대응된다. 이 고분에는 32기의 순장 돌덧널무덤이 중앙의 주피장자를 들러싸고 있어 주피장자가 대단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반파는 기문을 들러싸고 백제와 대립하였으나 왜, 백제, 신라의 협공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993#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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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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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2 日本書紀(720)
신라가 임나관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통틀어 말하면 임나이고, 개별적으로 말하면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찬국, 염례국 등 모두 열 나라다.
993#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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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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