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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三國史記(1145)
유리왕 31년에 왕망이 우리의 병력를 뽑아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법을 어기게 되고 도적이 되었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우리 장수 연비(延丕)를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서울에 보냈다. 왕망이 기뻐하며 우리 왕의 명칭을 하구려후로 바꾸고 천하에 알리게 하였다.
7508#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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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6 "百濟가 낙랑을 침공한 일은 304년에 있었다."
▐ 이 기록은 한인들이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했다는 삼국지(289)의 245년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삼국지에도 당시 대방태수가 궁준이고 낙랑태수는 유무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지에는 당시 백제가 마한 50여국의 하나에 불과했다고 되어 있어 이 기록과 큰 차이가 난다. 진서(648)에도 이 당시 조공의 주체로 백제왕이 나오지 않고 마한왕이 나와서 삼국지의 정황을 뒷받침한다. 이 기록에서처럼 백제가 낙랑을 공격하는 일은 304년 즈음에나 가능했다.
7508#1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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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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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 ❰❰ 0253 「三國誤記」
우로가 왜국의 사신 갈나고를 접대하며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를 듣고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치니 우로가 "내가 당해내겠다"하고 왜군에게로 갔다. 왜인이 잡아서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미추왕 때에 왜국의 대신이 왔는데 우로의 아내가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가 취하자 장사를 시켜 마당에 끌어 내 불태워 죽였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7508#7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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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1~0578 三國史記(1145)
후주 무제가 군사를 내어 遼東을 정벌하고자 하였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이산의 벌판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은 선봉이 되었는데 힘을 다해 싸워서 참수한 것이 수십 급이었다. 여러 군사들이 이긴 틈을 타서 맹렬히 공격해서 크게 이겼다.
▐ 북주의 무제는 575년 말에 북제 정벌에 나서 577년에 완성했다. 그러자 같은 해에 토욕혼, 백제, 고려 등으로부터 조공이 왔고 무제는 그들을 책봉했다. 북주와 고려가 전투를 치르는 일은 없었던 듯하다.
7508#1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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