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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10-26 미국의 박정희 살해 개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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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1-19 미국 비밀전문
12.12이후 우리는 한국의 정치적 전환기에 안정적인 바탕을 마련하도록 도움을 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적극적인 활동가가 되어버렸다. -- 12.12가 아니라 10.26이겠지. 체로키가 만들어진 것도 10.26 직후였다. 그리고 그 10.26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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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4-14 ~ 07-17 위컴과 전두환의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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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4-14 ~ 07-17 위컴과 전두환의 면담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신분으로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을 적어도 두 번은 접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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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07 미국 비밀전문
주한 미군사령부는 포항의 해병 1사단이 대전과 부산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다. 해병 1사단은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아래 있으므로 병력이동에는 미국 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아직 한국 군부로부터 병력 이동에 대한 아무런 요청이 없지만 만일 요청이 오면 미군사령부는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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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07 미국 비밀전문
( 미국은 박정희가 죽고 10일 뒤 한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로키’라는 최고위 비밀 정책팀을 만들었다. 이 전문은 대통령, 국무장관, 홀보루크, 국가안보회의 고위 정보 담당자와 글라이스틴 대사만 보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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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07 미국 비밀전문
한국 정부가 군대를 투입하는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반대한다는 암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답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 정부는 법과 질서유지를 위한 한국 정부의 비상계획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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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18? 미국 비밀전문
모든 특전사 부대가 비상 대기 중이며 13공수는 5월 16일, 17일 11공수도 서울지역으로 이동했다. 11공수는 서울로 이동한 마지막 부대로 이동 직전에는 강원도 사북에서 발생한 광부들의 소요사태 때문에 원주지역에서 대기상태에 있었다. 서울 외곽에 남아 있는 부대는 7공수뿐으로 이 부대는 아마 전주와 광주 지역 대학생들의 소요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 전 5월 15일에 서울에서 있었던 폭력시위로 경찰이 버스에 깔려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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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1 미군정보원 김용장의 보고
"전두환 씨가 그 당시 5월 21일 낮, 그러니까 한 점심시간쯤에 헬기를 타고 광주에 왔습니다. 이미 거기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 505보안부대장 이재우 대령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마는 그분들이 전투비행단장실에서 만나서 어떤 회의를 했고 그리고 거기서 사살명령이 하달됐다고 그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 jtbc 손석희는 미국에 대한 비판을 절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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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the first priority is the restoration of order in Kwangju by the Korean authorities with the minimum use of force without laying the seeds for wide disorde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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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충분한 논의 끝에 최우선 순위는 향후 무질서 상태가 확산되지 않도록 필요한 군 무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한국 당국이 광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공통적 합의에 도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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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 한국 군부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것이며, 이로 인해 휴전선 공백 등 상황이 악화되면 항모전단, 항모편대 그리고 오키나와와 하와이에 주둔중인 보병부대 등 지상군까지, 미국의 육해공군을 모두 지원한다는 계획을 언급했다. -- 광주사태는 미군철수 반대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미군이 없을 경우 광주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국군은 전방의 인민군과 후방의 폭동에 모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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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비밀전문
주한미대사관은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23일 발행되는 한국 신문에 실릴 수 있도록 22일 국무부가 성명을 발표하길 바란다”며 초안을 보냈는데, 신군부와 청와대가 성명 초안에 동의는 물론 환영했다고 전문에 기록돼 있다. 주한미대사관이 보낸 초안을 거의 그대로 담은 미 국무부의 성명은 평화적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외부 세력, 즉 조선이 상황을 악용하려 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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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비밀전문
우리는 미국이 계엄당국과 은밀히 결탁했다는 혐의가 두렵고 광주지역에서 반미 감정을 부추길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조처가 밖으로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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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2 미국 비밀전문
광주 폭도 수는 15만 명으로 증가했고 그들은 자동차 수백대와 화기 수천대를 탈취했다. 광주는 완전히 공포의 현장으로 변했다. 한국 정부는 전남지역에 20사단과 공군 그리고 특수부대를 비상 대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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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6 미국 비밀전문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이튿날인 27일 0시부터 진압작전이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광주의 무법 상황이 길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군사작전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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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6 미국 비밀전문
류병헌 합참의장이 워컴 장군에게 계엄군이 27일 자정 광주에 투입될 것이라고 통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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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7 ᑅ 미군정보원 김용장의 보고
"암매장한 곳 아무리 찾아봐도 (행방불명자 유골) 안 나옵니다. 나올 리가 없죠. 왜? 다 소각을 했으니까. 그 시신들이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와서 보일러실을 개조해서 거기서 소각을 했습니다. 그때 그 기간 동안에 (미국에) 보고했습니다." -- jtbc 손석희는 미국에 대해서는 절대 비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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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7 미국 비밀전문
계엄군이 광주를 탈환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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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5-29 전두환
미국은 12.12, 중앙정보부장 서리 취임, 5.17 조치 등 모두 한국으로부터 사전에 통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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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08-27 워커 주한미국대사, AP와의 회견
10월 사태 이후 미국이 한국 공작에서 가장 성공한 일은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우리 보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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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12-09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광주 미국문화원에 전남 지역 농민회 회원인 정순철, 김동혁, 박시영, 윤종형, 임종수 등과 대학생들이 방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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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02-02 전두환 레이건 회담
레이건은 1981년 1월 21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전두환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앞으로는 없을 것을 다짐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한다. 미국은 북한과 일방적으로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접촉해야 할 경우가 있게 되면 그때는 한미 양국이 반드시 다 같이 나란히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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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03-18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최인순, 김은숙, 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저지른 사건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학교 재학생 장덕술(당시 22세)이 사망했고, 역시 동아대학교 학생 김미숙, 허길숙 외 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유인물에는,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원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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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09-22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미국 문화원 정문 앞에서 폭발물이 폭파되어 경찰에 신고했던 영남고 허병철 군이 죽고 중부 경찰서 김철호 순경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83년 12월 8일 대간첩 대책본부는 다대포 해안에서 생포된 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을 생포하고 미 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에서 배후 조종한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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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민투위(三民鬪委.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위원회. 약칭 삼민투) 주도하에 서울의 5개 대학교 학생 73명이 연합으로 서울 미국문화원(현 서울특별시청 을지로청사)을 기습 점거,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내붙이고 주한 미국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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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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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카터와 김일성의 만남
카터는 Kwangju riots때 미국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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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5-18 5.18시민법정 검사단
한미연합사령관의 한국군 해병 1사단, 보병 20, 26, 30, 33사단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게 이양하는 방법으로 신군부에게 계엄실시에 필요한 병력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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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0 팀 셔록 기자 광주 방문
팀 셔록 기자는 미국이 20사단의 광주투입을 승인하고 도청수복 작전을 한국과 협의하였다는 사실을 폭로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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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유엔본부에서 미국 책임론 공방
브루스 커밍스는 Kwangju riots때 한국 정부를 지지했던 미국을 비판하였다. -- 브루스 커밍스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미국이 이북에 투하한 폭탄은 63만5천t으로, 2차대전 때 태평양전쟁 구역 전체에 투하한 50만3천t보다 많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북한의 도시와 마을이 40∼90%까지 파괴된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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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19 John Adams Wickham
"또한 나는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지원도 요청했을 것이다. 만일 더 큰 사태가 벌어졌다면 더 공격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 미군은 인민군에 대한 억지력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위 진압에도 개입할 용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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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7 미국대사 광주방문 항의
"80년 5월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전통제권을 활용해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고, 이는 1990년대 미국 팀 셔록 기자의 취재로 밝혀진 사실" -- 공수부대의 이동은 미국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공수부대는 지역을 방어하는 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인민군과의 전력균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했던 것은 군대를 동원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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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8 김용장/허장환
김용장, "광주항쟁 3~4일 전, 광주에 있던 미국인 시민권자 전부를 대피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미 국방성의 지시였다. 대피 명령이 나온 건 광주뿐이었다. 미국은 광주항쟁 발발 이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장환, "광주에 20사단이 투입된다. 20사단 병력 이동은 협정 규정상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어떠한 제재도 없었다. 방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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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7 청와대 국민청원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의 5·18미공개 자료 공개를 공식 요구해주십시오. (1) 주한미대사관과 미국무성 간에 오고간 전문 (2) 백악관 회의록 (3) 미국방부 DIA 문서 (4) 한미연합사 및 미8군과 미국 국방부 간에 오고 간 전문 (5) 한미연합사 회의록 (6) 주한미공군과 태평양 사령부 사이에 오고간 전문 (7) 광주 미공군과 용산 미사령부 사이의 전문과 상황일지 (8) 주한미대사관 회의록 (9) 미501정보여단의 보고서 (10) 미국무부 내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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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력사는 고발한다
"박정희 사살 사건은 민심의 버림을 받고 더는 쓸모없게 된 주구를 교체하기 위한 미국의 교활한 모략책동의 산물이다. 박정희 역도를 제거한 미제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를 형식적이나마 대통령의 자리에 앉혀놓고 실제로는 그때 괴뢰군에서 최고 정보기관인 보안사령부의 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전두환 놈을 새 주구로 점찍어 놓고 전두환으로 하여금 권력을 쥘 수 있도록 막후에서 조정하였던 것입니다."
http://qindex.info/i.php?f=4207#4208
 
 력사는 고발한다
"미국은 그때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대통령 카터)를 열어 광주봉기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할 데 대한 긴급조치를 내리고 그 돌격대로 전두환 역도를 내몰지 않았습니까?"
http://qindex.info/i.php?f=4207#4209
 
 미국은 광주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는데?
거짓말이다. 미국은 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내려보낸 공수부대가 사람을 마구 구타하고 짓밟는 등 매우 공격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전두환 신군부가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공수부대를 동원했을 당시, 미국은 여기에 반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 1980년에 공수부대가 투입된 곳은 서울, 대전, 전주 그리고 광주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곳은 광주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수부대 투입이 문제인가, 광주가 문제인가?
http://qindex.info/i.php?f=4207#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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