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 ISSUES > 1979 10.26 12.12 > 1980.05.18 ~ 26 광주□□

▐ 12.12 이후 미국은 전두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체포에 대한 반발로 폭동이 발생해서 반란으로까지 발전하자,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두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1980.05.21 공수부대 외곽 철수
자정에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공수부대의 외곽 철수를 건의하였다. 이를 수락한 계엄사령관은 오전에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후에 진종채 2군 사령관을 만나 이를 지시하였다. 2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전남도청을 경비하고 있던 11여단 61, 62, 63대대와 7여단 33, 35대대 1,212명은 저녁에 숙영지인 조선대로 철수했다.
4207#8246 SIBLINGS CHILDREN 8246
 
1980.05.21 미국대사관 보고
오래도록 자신들이 2등급시민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전라도민들은 전라도 정치 지도자 김대중의 체포 소식을 듣자 폭동을 일으켰다. 진압에 투입된 군인들이 경쟁 관계에 있는 경상도에서 왔다는 비난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4207#17101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1980.05.22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광주에서 60명의 사망자와 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전두환이 이 분쟁의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 한국 군부는 무력 사용을 절제하고 있다. 한국 군부가 실패하면 안되니 미국은 그들의 질서 유지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전두환은 한국을 후퇴시켰다. 전두환이 실권하면 권력 공백이 생길 것이다. 미국은 전두환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4207#27839 SIBLINGS CHILDREN COMMENT OPEN
 
1980.05.23 2군사령부 재진입 작전
21일 오후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2군사령부는 재진입 작전계획을 짰다. 23일 진종채 2군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충정작전'이라는 이름의 이 계획을 건의했다. 이때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비롯해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참석했다. 그러나 24일 오전 2시 실시될 예정이었던 이 작전은 미국의 요청으로 국방부장관이 지침을 내려 25일 오전 2시 이후로 연기하였다.
4207#9389 SIBLINGS CHILDREN COMMENT 9389
 
1980.05.25 전두환
Korea Monitoring Group Situation Report Number 7 군부 실력자 전두환 장군은 자신이 광주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속았으며 이제는 군사 행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4207#20592 SIBLINGS CHILDREN OPEN
 
1980.05.25~26 인민재판소
미국무부가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에 보낸 한국 감시 모임 상황 보고 제7호 "인민재판소가 설치됐고 몇몇 처형이 이뤄졌다." ➔ 제8호 "반란 세력이 인민재판소를 설치하고 처형까지 했다는 이전의 보고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
4207#20591 SIBLINGS CHILDREN OPEN
 
1980.06.03 계엄사령부
계엄사령부가 5월 31일에 발표한 보고서의 대강은 선동가들이 군중들을 자극하여 그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계엄사령부의 보고에 의하면, 그 폭동은 공산주의자들과 김대중 추종자들의 작품이었다.
4207#9359 SIBLINGS CHILDREN OPEN
 
1980.06.17 전두환
미상공회의소 간부들이 6월 4일에 전두환과 만찬을 하고 6월 13일에 미대사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광주에 대해 질문을 받자, 전두환은 열을 내며 길게 설명했다. 그는 김대중이 무리를 조종하여 혼란을 일으킨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사망자가 나온 것은 김대중에게 책임이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22구의 시신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모두 조선의 간첩일 수 있다고도 말했다.
4207#20590 SIBLINGS CHILDREN OPEN
 
1980.12.09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광주 미국문화원에 전남 지역 농민회 회원인 정순철, 김동혁, 박시영, 윤종형, 임종수 등과 대학생들이 방화한 사건이다.
4207#4212 SIBLINGS CHILDREN COMMENT 4212
 
1981.02.02 미군철수 철회
1979년에 미국은 대만주둔 미군을 철수시킨 데 이어 주한미군도 철수시키려 했으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1981년까지 연기했다. 그러나 1981년에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전두환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미군 철수를 철회했다. 1979년과 1981년 사이에 광주□□가 있었다. 이때 주한미군이 없었다면 한국은 적화통일되었을 것이다. 1975년에 월남이 공산화되는 등 당시까지도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4207#4213 SIBLINGS CHILDREN COMMENT 4213
 
1983.03.18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최인순, 김은숙, 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저지른 사건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학교 재학생 장덕술(당시 22세)이 사망했고, 역시 동아대학교 학생 김미숙, 허길숙 외 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유인물에는, '미국은 더 이상 남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민주주의를 원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4207#4210 SIBLINGS CHILDREN COMMENT 4210
 
1983.09.22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미국 문화원 정문 앞에서 폭발물이 폭파되어 경찰에 신고했던 영남고 허병철 군이 죽고 중부 경찰서 김철호 순경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83년 12월 8일 대간첩 대책본부는 다대포 해안에서 생포된 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을 생포하고 미 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에서 배후 조종한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4207#4211 SIBLINGS CHILDREN COMMENT 4211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민투위(三民鬪委.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위원회. 약칭 삼민투) 주도하에 서울의 5개 대학교 학생 73명이 연합으로 서울 미국문화원(현 서울특별시청 을지로청사)을 기습 점거,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내붙이고 주한 미국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4207#4214 SIBLINGS CHILDREN COMMENT 4214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1985.05.23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4207#5740 SIBLINGS CHILDREN COMMENT 5740
 
1994 카터와 김일성의 만남
1994 카터와 김일성의 만남
카터는 광주□□때 미국 대통령이었다.
4207#6052 SIBLINGS CHILDREN COMMENT 6052
 
1997.12.31 통일 후 미군주둔 주장
“미군의 한국 및 일본 주둔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동북아에서 군사적 진공사태가 발생해 일본과 중국 사이에 패권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4207#9469 SIBLINGS CHILDREN 9469
 
2002.05.18 5.18시민법정 검사단
한미연합사령관의 한국군 해병 1사단, 보병 20, 26, 30, 33사단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게 이양하는 방법으로 신군부에게 계엄실시에 필요한 병력을 제공했다.
4207#5739 SIBLINGS CHILDREN COMMENT 5739
 
2015.05.20 팀 셔록 기자 광주 방문
팀 셔록 기자는 미국이 20사단의 광주투입을 승인하고 도청수복 작전을 한국과 협의하였다는 사실을 폭로하였었다.
4207#4706 SIBLINGS CHILDREN COMMENT 4706
 
2017.05.29 유엔본부에서 미국 책임론 공방
브루스 커밍스는 광주□□때 한국 정부를 지지했던 미국을 비판하였다. ▐ 브루스 커밍스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미국이 이북에 투하한 폭탄은 63만5천t으로, 2차대전 때 태평양전쟁 구역 전체에 투하한 50만3천t보다 많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북한의 도시와 마을이 40∼90%까지 파괴된 것으로 추산했다.
4207#4703 SIBLINGS CHILDREN COMMENT 4703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2017.06.19 Wickham ⪢⪢
And I would also have been calling for assistance to suppress the unrest and if more thing to a bigger thing we would have been much more aggressive in dealing with it. "또한 나는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지원도 요청했을 것이다. 만일 더 큰 사태가 벌어졌다면 더 공격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4207#6055 SIBLINGS CHILDREN COMMENT 6055
 
2017.06.19 Wickham ⪢⪢
▐ 광주MBC뉴스는 광주□□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Wickham의 이 발언을 '시위에 가담한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이 군병력을 직접 지원하는 내용'이라 설명했다.
4207#26184 SIBLINGS CHILDREN 26184
 
2018.09.07 미국대사 광주방문 항의
"80년 5월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전통제권을 활용해 공수부대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고, 이는 1990년대 미국 팀 셔록 기자의 취재로 밝혀진 사실" ▐ 공수부대의 이동은 미국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공수부대는 지역을 방어하는 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인민군과의 전력균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했던 것은 군대를 동원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4207#5302 SIBLINGS CHILDREN COMMENT 5302
 
2019.05.18 김용장/허장환
김용장, "광주항쟁 3~4일 전, 광주에 있던 미국인 시민권자 전부를 대피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미 국방성의 지시였다. 대피 명령이 나온 건 광주뿐이었다. 미국은 광주항쟁 발발 이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장환, "광주에 20사단이 투입된다. 20사단 병력 이동은 협정 규정상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어떠한 제재도 없었다. 방관한 것이다."
4207#5738 SIBLINGS CHILDREN COMMENT 5738
 
2019.05.18 김용장/허장환
▐ 2023년에 이르러 김용장은 미군군사정보관이 아니었고 그가 작성해서 올렸다는 광주□□ 보고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4207#5050 SIBLINGS CHILDREN 5050
 
2019.11 홍콩민주화운동
2019.11 홍콩민주화운동
홍콩의 시민들이 미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홍콩인권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4207#6628 SIBLINGS CHILDREN COMMENT 6628
 
US Department of State FOIA Document - Kwangju
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 is a United States federal law that grants the public access to information possessed by government agencies.
4207#9326 SIBLINGS CHILDREN COMMENT 9326
 
김씨조선
김씨조선에서는 미국 카터 정부가 전두환을 돌격대장으로 광주에 보내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4207#5234 SIBLINGS CHILDREN 5234
 
미국은 광주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는데?
거짓말이다. 미국은 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내려보낸 공수부대가 사람을 마구 구타하고 짓밟는 등 매우 공격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전두환 신군부가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공수부대를 동원했을 당시, 미국은 여기에 반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 1980년에 공수부대가 투입된 곳은 서울, 대전, 전주 그리고 광주였다. 그런데 소요사태가 발생한 곳은 광주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수부대 투입이 문제인가, 광주가 문제인가?
4207#4675 SIBLINGS CHILDREN COMMENT 4675
 
한국이나 조선 정부가 미국개입설을 따진 적은 없다
한국이나 조선 정부가 미국개입설을 따진 적은 없다
특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문재인 정부는 전두환개입설, 발포명령설, 직승기사격설 등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미국개입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4207#8803 SIBLINGS CHILDREN COMMENT 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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