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성향의 하재팔은 해방 후 대구에서 국군준비대를 만들었으나 미군정에 의해 용납되지 않자 해체하고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다. 학교 수료 후 1946년 2월에 대구 중동에서 6연대가 창설되자 거기에 들어갔다. 6연대는 하재팔과 그해 10월에 일어난 대구인민봉기의 영향을 받아 분위기가 사회주의 성향으로 흘렀다. 1948년 여순 반란 이후 숙군 작업이 벌어지자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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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0 대구인민봉기
10월 1일 경북도청과 대구역 앞 광장에서 부녀자와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가 사망하자 다음날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대구경찰서를 점거하고 경찰들을 살해했다. 미군이 장갑차를 동원하여 출동하자 주동자들은 칠곡과 영천 등지로 흩어졌다.
3일에는 칠곡, 영천 그리고 구미에서 군중들이 일어나 경찰서를 점거하고 경찰과 지주들을 공격했다. 이날 충남의 경찰들이 도착하여 공격하자 주동자들은 팔공산과 유학산 등지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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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대구6연대 반란
여순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부대원이 대거 빠져나간 6연대에서 일어났다.
11월 2일 6연대 인사과 곽종진 상사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헌병대 조장필 소위를 사살하고 이정택 상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반란을 반대하는 하사관 10여 명을 사살하고 400~500여 명의 병력을 3 무리로 나누었다.
한 무리 20여 명은 앞산과 달성공원을 거쳐 북성로에서 경찰과 교전하다 2명이 사살되었다. 17시경에 경부선 통근 열차를 타고 도망하여 금오산으로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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