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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립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그리고 중화민국의 정상은 카이로에 모여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 후 타국으로부터 약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한국에 대해 앞으로 자유독립국가로 승인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
2716#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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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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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봉기
해방 직후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가 대세였다.
사람들 사이에는 일조시대에 쌓은 부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모두 빼앗아 고루 나눠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고 정치 세력도 사회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재빨리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앞서나갔다. 또 한국을 둘러싼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경쟁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은 일본이 패하고 중국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이제 한국을 장악할 나라는 소련 밖에 없으며 그 소련의 이념을 받아들일 수 밖에 ...
2716#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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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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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948년 12월에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이 철수하였다. 그리고 1949년 6월에는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도 500여 명의 군사 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하였다. 그해 12월 중국에서는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쫓겨나고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정세에 대응하여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은 1950년 1월 알류산, 일본, 오키나와 그리고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방어선은 한국, 대만 ...
2716#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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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1 대구6연대 반란
사회주의 성향의 하재팔은 해방 후 대구에서 국군준비대를 만들었으나 미군정에 의해 용납되지 않자 해체하고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다. 학교 수료 후 1946년 2월에 대구 중동에서 6연대가 창설되자 거기에 들어갔다. 6연대는 하재팔과 그해 10월에 일어난 대구인민봉기의 영향을 받아 분위기가 사회주의 성향으로 흘렀다. 1948년 여순 반란 이후 숙군 작업이 벌어지자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다.
2716#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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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보도연맹 학살
해방 직후 한국 민중들은 사회주의를 원했다.
이러한 염원을 반영하여 전국에 걸쳐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미군은 이 인공을 뭉개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우익 폭력조직을 사주하여 좌익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실시하였다.
대구인민봉기는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났고 제주인민봉기로 이어졌다.
이어서 한국전쟁까지 터지자 미국과 우익은 민중학살로 대응하며 이남 사회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27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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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0.17 윤보선
박정희는 간첩 황태성의 자금 20만불을 정치자금으로 써서 공화당을 조직하였다.
박정희가 물러나야 미국의 원조도 증가된다.
부산과 대구는 6.25당시 후퇴하지 않은 곳으로 빨갱이가 많고 인민군이 침입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박정희의 친형이 10.1폭동사건에 좌익분자로 총살당하였다.
박정희도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관련이 있었다.
2716#1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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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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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통일혁명당
통일혁명당은 김종태가 월북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자금을 받고 결성된 혁명 조직이었다. 통혁당은 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받는 지하당이었다. 주범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 이진영·오병헌은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북한에 머물렀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대구), 이문규(대구), 김질락(김종태 조카)이 사형을 선고 받았다. 신영복(의령)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88년에 석방되었다.
2716#1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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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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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 미군의 성격
일본의 패망 직후 미군은 일본군을 해산시킨다는 명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생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일방적으로 해체하고 38도선 이남 지역을 자신들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지역내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항복 또는 휴전조항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점령한 적 영토내에서 실질적인 통제를 하는 군대'라는 점령군(占領軍, Occupation Troops)의 의미에 정확히 일치한다.
해방군으로 남으려면 인공을 존중했어야 했다.
2716#1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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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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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대한민국이 먼저 건국되며 韓을 선점했기 때문에 이북에서는 어쩔 수 없이 朝鮮을 넣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했다고 하나 사실은 그 정반대다.
비록 미군정에 의해 묵살당했지만 해방 직후 조선인민공화국의 건국이 먼저 있었고 그 이후 朝鮮이라는 이름은 좌익에 의해 조선노동당과 조선공산당 등으로 이어졌다.
그 때문에 이남에서는 朝鮮을 국호로 쓸 수 없었다.
우익은 대체로 한국민주당처럼 韓을 선호했다.
2716#3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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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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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기념과 건국기념
임정건국론과 임정법통론은 민족해방운동에 있어서 임시정부의 역할을 절대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주장이다.
임정건국론은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기부터 주장했었고 임정법통론은 1945년 말에 임시정부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임정법통론에 대해 국내에서 조선인민공화국에 참여했던 세력은 반발했고 정치 세력은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는 좌파가 배제되었고 나라의 색깔은 임시정부의 입맛에 맞게 칠해졌다.
그래서 헌법1호부터 헌법5호 ...
2716#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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