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5) 고려의 해체 > 고려인 묘지

○ 연개소문(淵蓋蘇文)의 후손인 천남생, 천남산 그리고 천헌성의 무덤은 모두 낙양에 있다. 이들의 성이 泉인 이유는 당나라 초대 황제 李淵의 이름으로 쓰인 한자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나라에 투항한 후 성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0679 천남생묘지명
中國 河南省 洛陽. 公의 姓은 泉이며 諱는 男生이고 字는 元德으로서, 遼東郡 平壤城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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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 천남생묘지명
▶중국은 처음에 고려왕에게 樂浪公의 작위를 내리다 그 이후부터는 계속 遼東郡公 또는 遼東王의 작위를 내렸다. 수나라의 고려 침공을 최치원은 征遼라 표현했고 당시 고려왕도 스스로를 遼東의 신하라 표현했다. 당나라는 고려를 침공하기 전에 遼東은 본래 중국 땅이라는 말을 거듭 하기도 했다. 모두 당시 중국인들이 고려를 遼東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천남생의 묘지에 출신이 遼東郡 平壤城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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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 천남생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은 아비가 죽자 대막리지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지방을 순시하던 도중 동생들이 정변을 일으켜 평양을 장악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이자 국내성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중앙 정부에 대항하게 된다. 이어서 당나라에 거듭 원병을 요청하고 휘하의 국내성 등 6개성 백성과 당나라에 의하여 공략된 3개성의 백성을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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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 천남생
당나라는 그를 ‘사지절요동대도독 상주국현토군개국공 식읍 3천호’에 봉하고 고려 정벌군의 앞잡이로 내세워 평양성을 함락시킨다. 그 공으로 그는 당나라로부터 우위대장군에 제수되고 변국공 식읍 3천호에 봉하여진다. 그 뒤 당나라의 수도에서 거주하다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기자 677년에 그 관리로 임용되어 일하다 679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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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고자묘지명
中國 河南省 洛陽. 公은 이름은 慈이고 字는 智捷으로 朝鮮人이다. 先祖가 朱蒙王을 따라 해동의 여러 오랑캐를 평정하여 高句麗國을 건설한 이후 대대로 公侯宰相이 되었다. 高姓과 食邑 三千戶를 내리고 또한 金文, 鐵券을 내려 “마땅히 高密 자손은 대대로 侯를 봉하고 까마귀의 머리가 희게 되고 압록강이 마르지 않으면 승계를 끊지 않는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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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천헌성묘지명
中國 河南省 洛陽. 君의 諱는 獻誠이며 字도 獻誠이다. 그 先祖는 高句驪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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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천헌성
▶연남생의 아들 연헌성은 아비가 고려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였다. 아비의 명령으로 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당나라에 파견되었는데 당나라는 그에게 우무위장군이란 직함을 내리고 수레, 말, 비단 및 보도를 주어 국내성으로 돌려보냈다. 평양성이 함락되자 당나라로부터 우위대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우림위를 겸하였다. 그러나 후일 모반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측천무후가 뒷날 그 억울함을 알고 우우림위대장군을 추증하였으며 예를 갖추어 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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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천남산묘지명
中國 河南省 洛陽. 君의 諱는 男産이니 遼東 朝鮮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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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천남산
▶연개소문의 셋째 아들 연남산은 대막리지였던 형 연남생이 지방을 순시하는 틈을 타 작은 형 연남건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조카 연헌충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연남생이 당군의 앞잡이가 되어 평양성을 포위하자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하였다. 그 뒤 당나라로부터 사재소경에 봉하여지고 당나라의 수도에 거주하였었는데 작위는 요양군개국공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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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9 고진묘지명
羅振玉藏. 公의 諱는 震이며 字는 某이며 渤海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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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魏皇陵
일대는 낙양 북망산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고려 지배 세력들의 무덤이 이곳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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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00년전 唐나라에 끌려간 망국의 원혼들
연개소문(淵蓋蘇文·?~665년)의 맏아들로 고구려 멸망 직전 막리지(莫離支·왕 다음의 최고실권자)를 지낸 천남생(泉男生·634~679)과 그의 동생(연개소문의 셋째 아들) 천남산(泉男産·639~701), 천남생의 둘째 아들 헌성(650~692), 연개소문의 고손자 비(毖·708~729)의 무덤이 중국 뤄양(洛陽)에서 1300여년 만에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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