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0668 고려의 해체 > 0679~0779 고려유민 묘지명 > 0679 泉男生

(中國 河南省 洛陽) 公姓泉 諱男生 字元德 遼東郡平壤城人也
 
0679 천남생묘지명
(中國 河南省 洛陽) 公姓泉 諱男生 字元德 遼東郡●平壤城人也 공의 성은 천이며 휘는 남생이고 자는 원덕으로 요동군 평양성 사람이다. 將屠●平壤 用擒元惡 장차 평양을 함락시켜 악의 근원을 사로잡으려고 ●平壤道行軍大摠管兼使持節按撫大使 평양도행군총관겸사지절안무대사 風驅電激 直臨●平壤之城 前哥後舞 遙振崇 바람처럼 달리며 번개같이 내쳐서 막바로 평양성에 다다르니, 앞에서 노래부르고 뒤에서 춤추며 멀리 높은 성벽의 성가퀴를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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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 천남생
▐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은 아비가 죽자 대막리지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지방을 순시하던 도중 동생들이 정변을 일으켜 평양을 장악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이자 국내성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중앙 정부에 대항하게 된다. 이어서 당나라에 거듭 원병을 요청하고 휘하의 국내성 등 6개성 백성과 당나라에 의하여 공략된 3개성의 백성을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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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9 천남생
▐ 당나라는 그를 ‘사지절요동대도독 상주국현토군개국공 식읍 3천호’에 봉하고 고려 정벌군의 앞잡이로 내세워 평양성을 함락시킨다. 그 공으로 그는 당나라로부터 우위대장군에 제수되고 변국공 식읍 3천호에 봉하여진다. 그 뒤 당나라의 수도에서 거주하다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기자 677년에 그 관리로 임용되어 일하다 679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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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설화의 기원
ᐥ단군설화는 중국의 위만이 평양으로 건너와 세웠다는 위만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비롯되었다.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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