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1281 壇君 > -0195+ 王之都王險

삼국사기에는 ‘평양이 본래 선인 왕검(王儉)이 살던 곳인데 어떤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王之都王險)고 한다’고 되어 있고 사기에는 ‘위만이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王之都王險)'고 되어 있다. 두 기록에서 王之都王險이 일치하고 있는데 이 점은 왕검 전설이 위만조선의 건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남겨준다. 그렇다면 王儉 또한 王險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0210 진시황릉 椎髻(椎结 추계)
椎는 몽치라는 뜻이고 髻와 结는 묶은 머리라는 뜻이다. ┆ 椎 몽치 추 ┆ 髻 상투 계 ┆ 魋 몽치머리 추 ┆ 結 맺을 결, 상투 계 ▐ 위만이 망명할 때 했다는 魋結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진시황 병마용의 魋結로 상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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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건국설화
고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라 모두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건국설화는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왕조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위만조선도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병합하면서 그것을 말살시켰는지, 위만조선의 건국설화는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계속 전승되고 있었고 세월에 따라 변질되어 왕씨고려 때에는 우리가 아는 단군설화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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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기자동래설
기자동래설에 의하면 위만 왕조를 정벌하는 것은 기자의 후손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한 것에 대한 응징이고 한사군을 설치하는 것은 옛 주나라의 봉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병합하고 기자동래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위만조선의 건국설화가 있었다면 그것은 철저히 말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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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091 사기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몽치 모양으로 머리를 묶고 오랑캐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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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1 사기
元封 3년 여름, 尼谿相 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王險城은 함락되지 않았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長降(䧄)과 相 路人의 아들 最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成己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四郡을 설치하였다. 參을 봉하여 澅淸侯로, 陰은 荻苴侯, 唊은 平州侯, 長은 幾侯로 삼았으며, 最는 아버지가 죽은데다 자못 공이 있었으므로 溫陽侯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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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 夲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왕이 환도성으로 전란을 겪고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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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이전에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조선의 유민은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기록에는 없지만 위만조선이 망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유민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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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제왕운기(帝王韻紀)
漢元立昭二甲申 (羅之□□一年也) 開國馬韓王儉城 (今西京也 以高句麗縣名立國) 한 원제 건소 2년 갑신년(신라가 건국한지 21년이 되던 해)에 마한의 왕검성(지금의 西京. 고구려현의 이름으로 건국하였다.)에서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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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 검소하다, 험하다
又與險同。【荀子·富國篇】下疑俗儉。【註】儉讀爲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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險 험하다
又地名。【史記·朝鮮傳】都王險。【註】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前漢·地理志】遼東郡險瀆。【註】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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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準과 衛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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