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1281 ⏍ 壇君 > -0195 王之都王險

사기에는 ‘위만이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두었다(王之都王險)'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평양이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인데, 어떤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王之都王險)고 한다’고 되어 있다. 두 기록에서 王之都王險이 일치하고 있는데, 이 점은 왕검 전설이 위만조선의 건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남겨준다. 이 왕검전설은 훗날 단군설화로 발전하였다.
 
-0091 史記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몽치 모양으로 머리를 묶고 오랑캐의 옷을 입고,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2843#35211 SIBLINGS CHILDREN COMMENT 35211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0091 史記
元封 3년 여름, 尼谿相 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王險城은 함락되지 않았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長降(䧄)과 相 路人의 아들 最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成己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四郡을 설치하였다. 參을 봉하여 澅淸侯로, 陰은 荻苴侯, 唊은 平州侯, 長은 幾侯로 삼았으며, 最는 아버지가 죽은데다 자못 공이 있었으므로 溫陽侯로 삼았다.
2843#11688 SIBLINGS CHILDREN 11688
 
1145 三國史記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 夲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왕이 환도성으로 전란을 겪고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의 땅이다. 다른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2843#17159 SIBLINGS CHILDREN 17159
 
1281 三國遺事
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檀君王儉이 있어 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나라를 개창하여 朝鮮이라 했으니 高와 같은 시대이다.” 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桓因의 庶子인 桓雄이 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지라, 이에 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2843#31425 SIBLINGS CHILDREN 31425
 
2024.09.16 檀君의 정체
檀君(단군) 王儉(왕검)은 王險(왕험)에 도읍했던 衛滿(위만)이다.
2843#31740 SIBLINGS CHILDREN 31740
 
❶ 위만조선도 건국설화가 있었을 수 있다.
고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라 모두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다. 건국설화는 통치에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고대 왕조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다. 위만조선도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랬다면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병합하면서 말살시키고 기자조선설을 주입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계속 전승되었을 수 있고, 세월에 따라 변하며 왕씨고려 때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아는 단군설화가 되어 있었을 수 있다.
2843#20860 SIBLINGS CHILDREN OPEN
 
❷ 위만 이전의 조선은 건국설화가 따로 있다.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평양에 도읍하였던 나라는 위만조선과 그 이전의 조선 밖에 없다. 그런데 위만 이전의 조선은 기자동래설이라는 건국설화가 따로 있기 때문에 단군설화의 뿌리가 될 건국설화로는 위만조선의 그것 밖에 없다.
2843#11765 SIBLINGS CHILDREN 11765
 
❸ 위만의 건국과 단군설화는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聚黨千餘人 → 率徒三千 위만은 무리 천여명을 모아 망명했고 환웅은 무리 삼천명을 거느리고 내려왔다.┆渡 → 降 위만은 패수를 건넜고 환웅은 인간세상에 내려왔다.┆秦故空地 上下鄣 → 太伯山頂 神壇樹下 위만은 일단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고 환웅은 일단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었다.┆王之都王險 → 王之都王險 위만과 왕검 모두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
2843#31424 SIBLINGS CHILDREN 31424
 
儉 검소하다, 험하다
又與險同。【荀子·富國篇】下疑俗儉。【註】儉讀爲險。
2843#11651 SIBLINGS CHILDREN 11651
 
險 험하다
又地名。【史記·朝鮮傳】都王險。【註】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前漢·地理志】遼東郡險瀆。【註】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名。
2843#11650 SIBLINGS CHILDREN 11650
 
魋結
椎 몽치 추┆髻 상투 계┆魋 몽치머리 추 ┆結 맺을 결, 상투 계 ▐ 椎는 몽치라는 뜻이다. 몽치는 길이가 짧고 단단한 나무 몽둥이를 말한다. 髻와 结는 묶은 머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魋髻 또는 魋結는 몽치 머리 또는 상투를 말한다. 위만이 망명할 때 했다는 魋結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진시황 병마용의 魋結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2843#14386 SIBLINGS CHILDREN 143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