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4) 낙랑고려 > 무덤 벽화 > 0408 덕흥리 진묘(鎭墓)

유주자사를 지낸 중국계 진(鎭)의 무덤이다.
 
0337~0370 연(前燕)
요서 일대에 살던 모용(慕容)선비는 307년 모용외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조(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업(鄴)으로 옮겼다. 370년 진(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10901
 
0350~0394 진(前秦)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저족은 오호십육국시대 초기에는 포홍을 지도자로 하여 전조(前趙) 및 후조(後趙)의 용병으로 각지를 전전하였다. 특히 후조에 의해 하북성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포홍의 아들 부건이 장안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351년에 전진을 건국하였다.
10907
 
0384~0407 연(後燕)
선비족 모용수(慕容垂)가 건국한 나라이다.
10904
 
Parthian Shot
말을 타고 달리며 등을 돌려 쫓아오는 호랑이를 향해 활을 겨누는 장면은 사냥 그림의 상투적인 장면이다. 이 그림의 사냥꾼은 두건을 쓰고 있어 압록강 중류의 무덤벽화에 나오는 깃털 모자와 다르고 오히려 북제의 무덤그림에 나오는 두건과 유사하다.
10859
 
동북아역사재단
1976년에 발굴된 덕흥리 벽화고분은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리에 위치한 408년의 기년명이 있는 고분이다. 또한 명문에 의해 그 피장자가 유주자사를 지낸 진(鎭)이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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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동영상
10858
 
묵서명
□□郡 信都縣 都鄕 [中]甘里 사람이며 釋迦文佛의 弟子인 □□氏 鎭은 역임한 관직이 建威將軍·國小大兄·左將軍·龍驤將軍·遼東太守·使持節·東夷校尉·幽州刺史이었다. 鎭은 77세로 죽어, 永樂 18年 戊申年 초하루가 辛酉日인 12월 25일 乙酉日에 완성해서 靈柩를 옮겼다.
10905
 
묵서명※
신도현은 지금의 하북성 형수시다. 유주도 지금의 하북성 일대인데 鎭은 유주가 전연, 전진 그리고 후연으로 이어지며 점유되던 시기를 살았다. 따라서 鎭은 이들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서 유주자사를 지내다 고려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10906
 
백라관
340
 
수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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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지도
1426
 
인면조신(人面鸟身)
10804
 
중국 지역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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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의 재발견
무덤의 전실 안쪽 벽 상단에서는 총 14행 154자의 무덤 주인 진(鎭)의 묵서(墨書) 묘지명이 발견되었다. 이 묘지명에 따르면, 무덤 주인공은 군 신도[현] 도향 감리(郡信都[縣] 都鄕 甘里) 출신의 진(鎭)이라는 사람으로, 유주자사(幽州刺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77세로 생을 마감하여 영락(永樂) 18년(408) 12월에 무덤 완성 후 영구(靈柩)를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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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도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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