鎭 - 建威將軍 國小大兄 左將軍 龍驤將軍 遼東太守 使持節 東夷校尉 幽州刺史
▶鎭은 하북 사람이다. 요동과 유주는 전진과 후연이 번갈아가며 차지했었다. 따라서 요동태수나 유주자사는 전진 또는 후연에서 받은 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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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hian Shot
말을 타고 달리며 등을 돌려 쫓아오는 호랑이를 향해 활을 겨누는 장면은 사냥 그림의 상투적인 장면이다. 이 그림의 사냥꾼은 두건을 쓰고 있어 압록강 중류의 무덤벽화에 나오는 깃털 모자와 다르고 오히려 북제의 무덤그림에 나오는 두건과 유사하다.
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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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1976년에 발굴된 덕흥리 벽화고분은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리에 위치한 408년의 기년명이 있는 고분이다. 또한 명문에 의해 그 피장자가 유주자사를 지낸 진(鎭)이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4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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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명
□□郡 信都縣 都鄕 [中]甘里 사람이며 釋迦文佛의 弟子인 □□氏 鎭은 역임한 관직이 建威將軍·國小大兄·左將軍·龍驤將軍·遼東太守·使持節·東夷校尉·幽州刺史이었다. 鎭은 77세로 죽어, 永樂 18年 戊申年 초하루가 辛酉日인 12월 25일 乙酉日에 완성해서 靈柩를 옮겼다.
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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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명※
신도현은 지금의 하북성 형수시다.
유주도 지금의 하북성 일대인데 鎭은 유주가 전연, 전진 그리고 후연으로 이어지며 점유되던 시기를 살았다.
따라서 鎭은 이들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서 유주자사를 지내다 고려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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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의 재발견
무덤의 전실 안쪽 벽 상단에서는 총 14행 154자의 무덤 주인 진(鎭)의 묵서(墨書) 묘지명이 발견되었다. 이 묘지명에 따르면, 무덤 주인공은 군 신도[현] 도향 감리(郡信都[縣] 都鄕 甘里) 출신의 진(鎭)이라는 사람으로, 유주자사(幽州刺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77세로 생을 마감하여 영락(永樂) 18년(408) 12월에 무덤 완성 후 영구(靈柩)를 옮겼다고 한다.
4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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