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건너 우라산성을 정벌하였다. 이때 동쪽으로는 황성, 북쪽으로는 동녕부, 서쪽으로는 바다, 남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는 지역의 주민들이 대거 왕고로 귀순하여 이 지역은 텅 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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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01 고려사(1451) 2
동녕부의 동지인 이오로첩목아는 이성계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우라산성으로 이동해 주둔하여 험한 지형에 의지해서 항거하려고 하였다. 태조가 야둔촌에 이르자 무기를 버리고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저의 선조는 본래 고려 사람이니(吾先本高麗人), 신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고 300여 호를 거느리고 투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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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01 고려사(1451) 3
두목 20여 명이 무리를 이끌고 나와서 항복하니, 여러 성들이 소문을 듣고 모두 항복하였으므로 모두 10,000여 호를 얻게 되었다. 노획한 소 2,000여 마리와 말 수백 필을 모두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니 북방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으며, 귀순하는 자들로 저자거리와 같게 되었다. 동쪽으로는 황성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동녕부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는 지역이 텅 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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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쌍성총관부와 @우라산성
1356년에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데 이어 1370년에는 압록강 건너 우라산성을 정벌하였다.
이때 동쪽으로는 황성, 북쪽으로는 동녕부, 서쪽으로는 바다, 남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는 지역의 주민들이 대거 왕고로 귀순하여 이 지역은 텅 비게 되었다. 적어도 1370년 직전에는 동녕부와 압록강 사이의 지역이 왕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계는 광개토왕릉비를 지날 때 금황제의 비로 인식했고 우라산성은 이성계에게 투항할 때 고려의 후손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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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 龍飛御天歌
平安道 江界府 西越江古百四十里 有大野 中有古城 諺稱大金皇帝城 城北七里有碑 又其北有石陵二
평안도 강계부 서쪽으로 강을 건너 140리 쯤에 큰 벌판이 있다. 그 가운데 옛 성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대금 황제성이라고 일컫는다. 성 북쪽으로 7리 쯤에는 비석이 있다. 또 그 북쪽에는 돌무덤 2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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❻ @우라산성 @亏羅山城
時東寧府同知李吾魯帖木兒 聞太祖來 移保亏羅山城 欲據險以拒
이때 동녕부의 동지인 이오로첩목아는 이성계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우라산성으로 이동해 주둔하여 험한 지형에 의지해서 항거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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