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史記 : 본기 - 高句麗부흥운동(8년 AD 682)
영순 초년(682)에 죽으니 위위경을 추증하고, 명령을 내려 [당나라] 수도로 옮겨 힐리의 무덤 왼쪽에 장사지내고 무덤 앞에 비를 세웠다. 그 백성들은 하남·농우의 여러 주로 흩어서 나누어 옮기고, 가난한 사람들은 안동성 옆의 옛 성에 남겨 두었는데, 간혹 신라로 도망하는 자들이 있었다. 나머지 무리들은 흩어져 말갈과 돌궐로 들어가 고씨 임금은 마침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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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 본기 - 성덕왕(32년)
32년(733) 가을 7월에 발해말갈(渤海靺鞨)이 바다를 건너 등주(登州)를 쳐들어갔으므로, 당나라 현종이 태복원외경(太僕員外卿) 김사란(金思蘭)을 귀국시켜 왕에게 관작을 더해 주어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영해군사(寧海軍使)로 삼고 군사를 일으켜 말갈의 남쪽 변방을 치게 하였다. 때마침 큰 눈이 내려 한 길 남짓 되었으므로 산길이 막히고 군사 중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어 아무런 전공 없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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