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에는 “응신천황이 신라의 유례왕때를 당하여 신라 군사가 명석포에 와서 흰 말을 죽여 맹서를 받아 간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라 적간관 동쪽에 백마총이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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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5 구당서(945)
융(隆)이 웅진성에 이르러 신라왕 법민과 백마를 잡아 놓고 맹약하였다. 먼저 천신·지기 및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나서 피를 마셨다.
전백제태자 사가정경 부여융을 세워 웅진도독으로 삼아서 제사를 받들고 그의 고장을 보존하게 하였다.
삽혈을 마치고 나서 단하 깨끗한 곳에 폐백을 묻고, 맹서문은 신라의 종묘에 간직하였다. 인원·인궤 등이 돌아오자, 융(隆)은 신라를 두려워하여 곧 경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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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臺
▐ 신라가 왜를 침공했다는 이야기는 세 가지가 있다. 411년에 왜를 침공하여 명석포에서 백마를 잡아 항복의 맹세를 받아냈다는 이야기와 583년에 왜의 서쪽 변방을 침공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태종 무열왕(654~661)이 대마도를 정벌할 때 행차하여 지휘한 곳을 태종대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모두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
22542#1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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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石浦
▐ 신라가 이곳까지 쳐들어와서 왜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는 백제가 요서와 북평을 점유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이상하다. 여러 기록을 통해 구성한 당시의 정황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백강구 전투 후 당나라는 신라왕 법민과 백제왕자 부여융으로 하여금 백마를 잡아놓고 화해의 맹세를 하도록 하였는데, 그 이야기가 후대에 이렇게 투영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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