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자료 > 속국(屬國)
 
1419 세종 1년 4월 16일
禮曹啓 聖節賀禮 依藩國儀注 跪左膝三叩頭 從之 예조에서 계하기를, “천자의 탄생을 경축하는 예의는 속국의 의주에 의하면, 왼쪽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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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성종 1년 5월 1일
경복궁(景福宮)에 이르러 사신이 조서(詔書)·고명(誥命)·칙서(勅書)를 내렸는데, 그 조서는 이러하였다. “짐은 공경히 큰 판도를 이어받아 병한(屛翰, 제후국, 속국)이 융성하도록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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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 연산군 1년 1월 13일
성종원년 5월에 선황제(先皇帝)께서 조서[詔]를 내리기를, “짐이 공경히 제업(帝業)을 이어받아, 속국(屬國)을 잘 돌보기에 힘써서, 먼 데 사람을 회유(懷柔)하여 가깝게 만들고, 일체(一體)로 보아 똑같이 사랑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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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 중종 24년 8월 29일
이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모두들 우리 나라를 흥리(興利)하는 나라로 지목하고, 심지어는 과거를 볼 때 책제(策題)로 출제하여 ‘조선은 예의를 가탁하여 중국에서 이(利)를 도모하니, 내왕을 막는 것이 좋은가? 기미국(羈縻國, 속국)으로 두는 것이 좋은가?’ 하는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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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선조 25년
성천자(聖天子)의 명을 받들고 속국(屬國)을 구하기 위해 왔는데 어찌 예물을 쓰십니까. 성심(誠心)만은 받겠습니다. 국왕께서 지나치게 저를 예우하시니 힘을 다해 적을 토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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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 선조 26년
한편으로는 속히 남병의 포수를 선발, 밤새 달려오도록 해서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경성을 바로 공격하여 잔영을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적들을 속히 전멸하게 하여 위로는 천자의 위엄을 떨치고, 아래로는 속국(屬國)을 보존시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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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 선조 26년
‘조선은 대명(大明)의 속국(屬國)인데, 그 왕자가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특별히 강화하여 어려움을 풀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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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 정조 08년
지난번 흠차 사신(欽差使臣)이 고려(高麗)로 출사(出使)했는데, 듣자니 서울에 들어갈 때에 해당 국왕이 가마[輿]를 마련해가지고 마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속국(屬國)에서 천조(天朝)의 칙사(勅使)를 공경하는 공순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지만, 다만 만주 대신(滿洲大臣)은 본래 안마(鞍馬)에 익숙한 만큼 자신이 어명을 받고 출사하였다면, 사모(四牡)를 타고 명령을 전달할 것이지, 견여(肩輿)를 타고 스스로 편안히 할 궁리를 하는 것은 마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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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 정조 09년
짐이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는 것도 속국(屬國)을 흠휼히 여기는 뜻이 못된다. 모든 조선국에서 오랫 동안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 각각의 물품은 필경 해당 관청에서 모조리 거두어 받아들이고, 이어서 장부의 원래 물건을 대조하여 될수록 우대하여 상을 더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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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순조 30년
조선 국왕은 정성스럽게 번봉(藩封)을 지키며 해마다 직공(職貢)을 닦아 속국(屬國) 가운데서 가장 공순(恭順)하다고 일컬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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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고종 20년
변경(邊境)의 육로 무역(陸路貿易)은 원래 중국이 속국(屬國)을 우대하고 오로지 백성의 편의를 위하여 개설한 것으로서, 각 항구에서 통상(通商)하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수시로 왕래할 수 있게 한 것은 봉천성(奉天省)과 조선 변경의 상인(商人)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기타 각국은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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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고종 21년
조선은 오랫동안 번국(藩國)으로 있으면서 힘써 조공을 바쳐 왔다. 이제 두 나라의 변경에서 진행하던 무역의 옛 규례를 수시로 진행하는 무역으로 고친다. 이는 중국이 속국(屬國)을 우대하는 의미와 관련된다. 길림과 조선간의 무역규정을 세우는 것은 각국 통상규정과는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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