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108 낙랑 > 한사군 > 남감(□邯)
 
BC 0177 후한서(445)
王景字仲通樂浪䛁邯人也八世祖仲本琅邪不其人好道術明天文諸呂作亂劉哀王襄謀發兵而數問於仲及濟北王興居反欲委兵師仲仲懼禍及乃浮海東奔樂浪山中因而家焉 왕경은 자가 중통인데 낙랑 남감 사람이다. 8세조 仲은 낭야 불기 사람인데 도술을 좋아하고 천문에 밝았다. 여씨가 횡포를 부리자 유애왕 襄이 군사를 일으키려 여러 차례 仲에게 자문을 구했다. 제북왕 흥거가 반란을 일으켜 병사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하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바다 건너 낙랑의 산 속으로 도망가 정착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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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77 후한서(445)
-- 낭야군 불기현은 오늘날의 산동성 청도시에 해당된다. 제북왕 흥거는 유애왕 襄의 아우다. 제북왕 흥거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기원전 177년이다. 이때는 낙랑군이 설치되기 전으로, 위만조선은 중국의 난민들을 흡수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위만 또한 연나라 사람인데 요동의 요새를 나와 조선으로 망명하였다가 조선의 왕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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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조선) 䛁邯(남감) 增地(증지) 黏蟬(점제) 駟望(사망) 屯有(둔유) 帶方(대방) 列口(열구) 長岑(장잠) 海冥(해명) 昭明(소명) 提奚(제해) 含資(함자) 遂成(수성) 鏤方(누방) 渾彌(혼미) 浿水(패수) 吞列(탄열, 원문에는 吞에 초두가 붙어 있다.) 東暆(동이) 蠶台(잠태) 不而(불내) 華麗(화려) 邪頭昧(사두매) 前莫(전막) 夫租(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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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 후한서(445)
父閎爲郡三老更始敗土人王調殺郡守劉憲自稱大將軍樂浪太守 建武六年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至遼東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皆封爲列侯閎獨讓爵帝奇而徵之道病卒 왕경의 아비 굉(閎)은 낙랑군의 삼로가 되었다. 경시제가 패하자 토착인 왕조가 군수 유헌을 죽이고 대장군 낙랑태수를 칭했다. 건무 6년에 광무제가 태수 왕준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게 하였다. 요동에 이르자 왕굉이 결조사 양읍과 함께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이하였다. 모두 열후에 봉했으나 왕굉은 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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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漢書)
樂浪郡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縣二十五 낙랑군의 호수는 62,812호고 인구는 406,748명이며 25현이 있다. 朝鮮 俨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傥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탄열, 동이, 불이, 잠태, 화려, 사두매, 전막,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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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漢書)
朝鮮,□邯,浿水,水西至增地入海。莽曰樂鮮亭。 조선, 남감, 패수는 물이 서쪽으로 흘러 증지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망은 낙선정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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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後漢書)
樂浪郡 武帝置 雒陽東北五千里 十八城 户六萬一千四百九十二 口二十五萬七千五十 낙랑군은 무제가 치소를 두었다. 낙양으로부터 동북 5천리 18성 61,492호 257,050구다. 朝鮮 남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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