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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 䛁邯 淇水 黏蟬 増地 樂都 )
 
단군설화의 기원
ᐥ단군설화는 중국의 위만이 평양으로 건너와 세웠다는 위만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비롯되었다.ᐥ
 
朝鮮 ↜ 낙랑토성
대동강 남안에 토성이 있는데, 그 주변에 한나라 양식의 고분이 많이 출토되고 낙랑을 명시하는 새김도 발견되므로 이곳을 낙랑군의 치소로 판단한다. ❶ 한나라 수군은 바다를 건너 열수의 하구에 도착한 뒤 왕험성을 공격했으므로 왕험성은 열수 인근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랑군은 왕험성을 함락시키고 설치되었으므로 그 치소는 왕험성 인근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낙랑군 치소가 접해 있는 대동강이 열수가 된다.
14985#2746 COMMENT
 
黏蟬 ↜ 점제비
대동강 하구 인근에서 점제비가 발견되어 점제현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❶ 이로써 점제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는 열수는 대동강이 된다. 이는 낙랑구역을 통해 대동강이 열수라고 추정한 것과 일치한다.
14985#2749 COMMENT
 
吞列 ↜ 열수 + 지리지
탄열에서 열수가 시작되고 열수는 대동강으로 판단되므로 탄열은 대동강의 발원지 인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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浿水 ↜ 조선 + 사기
패수현은 패수에 있었다. ❷ 패수는 요동과 조선 사이의 경계였는데, 한나라 육군이 패수를 건너 곧바로 평양성에 이르렀고 수군은 대동강 하구에 먼저 도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패수는 청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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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地 ↜ 패수 + 지리지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 증지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패수는 청천강이므로 증지현은 청천강 하구의 남쪽 편이다.
14985#2822 COMMENT
 
䛁邯
-0177 後漢書(445)-0177 後漢書(445)-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0008 漢書(82)0220 後漢書(445)0276 진서(648)0612 수서(636)
 
屯有
대방 바로 북쪽에 있는 자비령은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자연 경계의 역할을 해 왔다. 낙랑군과 대방군의 경계도 이 자비령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둔유는 자비령 바로 북쪽이었을 것이다.
14985#2783 COMMENT
 
渾彌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0008 漢書(82)0220 後漢書(445)0276 진서(648)0612 수서(636)
 
遂成
遂城은 漢書에 낙랑군 25현의 하나로 나오고 後漢書에는 낙랑군 18성의 하나로 나오며 晉書에도 낙랑군 6현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魏書에는 낙랑군 2현에서 빠져 있다. 낙랑에서 기원한 이 遂城은, 그 이후 다시 행정구역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첫번째의 遂城이다.
14985#2821 COMMENT
 
鏤方
한나라는 낙랑군의 단단대령 동쪽 7현을 동부도위로 묶었다가 나중에 이마저 폐지하였다. 전한 25현이 후한 18성이 된 건 이 때문이다. 누방은 후한 18성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단단대령 서쪽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누방에서 발원한 물은 동남쪽으로 흘러 동쪽 바다로 들어갈 수 없다.
14985#2754 COMMENT
 
駟望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0008 漢書(82)0276 진서(648)0612 수서(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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