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半島의 古代 地名 > 車竹以北 - 內·奴·弩 (들)

고려에서는 들을 內, 奴 또는 弩로 불렀고 原 또는 壤으로 표기했다.
 
0003 王遷都於國内 築尉那巖城
33072#37613 SBLNGS CHLDRN 37613
 
0048 閔中原
王田於閔中原┆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必葬於此 不湏更作陵墓┆王薨 王后及羣臣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33072#37605 SBLNGS CHLDRN 37605
 
0053 慕本原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33072#37606 SBLNGS CHLDRN 37606
 
0197 故國川原
故國川王 或云國襄┆葬于故國川原 號爲故國川王
33072#37586 SBLNGS CHLDRN 37586
 
0248 柴原
東川王 或云東襄┆葬於柴原 號曰東川王 至葬日 至墓自死者甚多 國人伐柴 以覆其屍 遂名其地曰柴原
33072#37587 SBLNGS CHLDRN 37587
 
0270 中川之原
國東❪中❫西美+❪川❫壤原┆國東❪中❫西好+川❪壤❫原
33072#37588 SBLNGS CHLDRN 37588
 
0292 西川之原
0270 國東中❪西❫美+❪川❫壤原┆國東中❪西❫好+川❪壤❫原
33072#37595 SBLNGS CHLDRN 3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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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0331 羙川之原
國東中西❪美❫+❪川❫壤原┆國東中西❪好❫+川❪壤❫原
33072#37596 SBLNGS CHLDRN 37596
 
0371 故國之原
❪故❫+❪國❫東中西美+川壤❪原❫┆囯罡上
33072#37597 SBLNGS CHLDRN 37597
 
0391 故國壤
葬於故國壤 號為故國壤王 ▐ 맥고려에는 故國川의 原에 묻힌 國壤王과 故國壤에 묻힌 故國壤王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것은 國川의 原이 곧 國壤이라는 이야기가 되니, 맥고려는 原을 壤이라고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33072#37598 SBLNGS CHLDRN 37598
 
0427▐ 原
0427▐ 原
맥고려의 왕은 閔中原, 慕本原 등 原에 묻힌 사람이 많다. 맥고려의 고분이 대부분 들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 原은 들의 훈차일 것이다. 맥고려는 原을 壤이라고도 했으니, 그렇다면 壤도 들의 훈차가 된다.
33072#37509 SBLNGS CHLDRN 37509
 
0551 今勿内(今勿奴·萬弩)
今勿内郡(一云萬弩)┆黒壤郡 一云黄壤郡 本髙句麗今勿奴郡
33072#35759 SBLNGS CHLDRN 35759
 
0551 仍伐奴
糓壤縣 本髙句麗仍伐奴縣
33072#35765 SBLNGS CHLDRN 35765
 
0551 仍斤內
槐壤郡 本髙句麗仍斤内郡
33072#35762 SBLNGS CHLDRN 35762
 
0551 於斯内
於斯内縣(斧壤)
33072#35777 SBLNGS CHLDRN 35777
 
0551 骨衣奴
荒壤縣 夲髙句麗骨衣奴縣
33072#35764 SBLNGS CHLDRN 35764
 
0551_ ▐ 内
0551_ ▐ 内
고려의 지명 今勿内는 黒壤으로 바뀌었고, 仍斤內는 槐壤으로 바뀌었으며, 於斯内는 斧壤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기서 壤이 内의 훈차일 가능성이 생긴다. 앞서 壤을 들의 훈차로 추정했는데, 그렇다면 고려에서는 들을 内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농경민에게 들은 중요한 지형이고 그래서 고려의 지명에도 반드시 들어가 있었을 텐데, 고려의 지명에 들어있는 말 중에는 内보다 들에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없다. 이 內는 奴 또는 弩로도 표기되었다.
33072#37510 SBLNGS CHLDRN 37510
 
20세기초 통구분지
20세기초 통구분지
▐ 國川이 흐르는 들을 國内, 國原 또는 國壤이라고 했다.
33072#37614 SBLNGS CHLDRN 37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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