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publications > YouTube > 0668 高麗는 韓國의 역사가 아니다. > 0551 高麗에서는 들을 内라 했고 韓國에서는 伐 또는 夫里라 했다.
 
0551 0551 高麗에서는 들을 内라 했고 韓國에서는 伐 또는 夫里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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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고려 지명에 나타나는 原, 壤 그리고 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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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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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髙句麗本紀 閔中王 四年 夏四月 王田於閔中原 秋七月 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必葬於此 不湏更作陵墓 五年 王薨 王后及羣臣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慕本王 六年 冬十一月 杜魯弑其君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故國川王 或云國襄 故國川王 十九年 夏五月 王薨 葬于故國川原 號爲故國川王 故國壤王 九年 夏五月 王薨 葬於故國壤 號為故國壤王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민중왕 4년 여름 4월. 임금이 민중원에서 사냥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을 나갔다가 석굴을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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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고려에는 故國川의 原에 묻힌 國壤王과 故國壤에 묻힌 故國壤王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故는 후대에 붙인 접두사이니, 이것은 곧 國川의 原에 묻힌 왕이나 國壤에 묻힌 왕을 모두 國壤王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되어, 맥고려는 原과 壤을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죠. 한편, 맥고려의 왕은 閔中原, 慕本原 등 原에 묻힌 사람이 많습니다. 맥고려의 고분이 대부분 들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 原은 들의 훈차였겠죠. 맥고려는 原과 壤을 같은 뜻으로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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