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을 자처하면서 미군철수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민중들의 민족 정서를 지나간 역사 문제로 쏠리게 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민중들의 관심을 미군철수 자주화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니 결과적 식민사학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주로 쓰는 수법은 역사 기록에서 어색한 부분을 골라 이를 크게 비약시키고 민중들의 민족 정서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식민 재야사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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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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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4 광무제가 설치한 낙랑군
한나라가 44년에 바다를 건너 낙랑을 취하고 살수 이남을 한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遣兵渡海伐樂浪取其地爲郡縣薩水已南屬漢)는 삼국사기(1145)의 기록은, 한나라가 30년에 낙랑군의 반란을 진압하고 통치를 회복했다는 후한서(445)의 기록과 낙랑왕 최리가 37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는 전래 기록을 잘못 종합한 결과다.
3885#6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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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 요동 철령위
결과적 식민사학자들이 명나라가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한 사실을 들어 철령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사(1451)에는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 영흥만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강계까지 왔었다고 나와 있다. 철령 이북이 영흥만이다.
3885#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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