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1991 미군철수 자주화

냉전의 해체 이후 미군철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BC 0108~0313 한사군과 임나(0391~0562)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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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6 광개토왕, 장수왕 그리고 청태종
서울은 외세의 침공에 거듭 항복한 역사가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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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일본서기(720)
겨울 고려의 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백제를 쳐서 없앴다. 이 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있어 창하에 모여 있었는데 군량이 다하자 매우 근심하여 울었다. 이에 고려의 장수들이 왕에게 “다시 덩굴처럼 살아날까 두려우니, 쫓아가 없애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왕은 “안된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은 일본국의 관가가 되었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또 그 왕이 들어가 천황을 섬긴 것은 사방의 이웃들이 다 아는 바이다”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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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4 일본서기(720)
이로 인해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하여 돌아왔다. 여창이 국조가 활로 포위 군대를 물리친 것을 칭찬하고 높여 “안교군”이라 이름하였다(안교는 우리 말로 くろじ라 한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음을 모두 알고 드디어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한 장수가 “안된다. 일본 천황이 임나의 일 때문에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백제관가를 멸망시키기를 꾀한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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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0~0661 제명천황의 백제 지원
천황은 다음과 같이 조를 내렸다. "구원군을 청하는 것은 예전에도 있었다고 들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돕고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것은 고전에도 적혀있다. 백제국이 곤궁하여 우리나라에 의지해 와서 ‘본국은 나라가 망하여 의지할 곳도 부탁할 곳도 없이 창을 베고 자며 쓴맛을 보는 괴로움을 겪고 있으니, 반드시 구원해 달라’고 멀리서 와서 표를 올렸다.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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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
비문은 유인원의 가문과 생애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생애에 대한 부분은 주로 그가 당나라 태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을 적고 있다. 그는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660년에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뒤 백제유민들의 부흥운동도 평정하였다. 부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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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삼국사기(1145)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총장 연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 배에 군사 13만을 싣고 바다를 건너게 하였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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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삼국사기(1145)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지난날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깨뜨렸다. 그런 까닭에 평양 옛 도읍은 무성한 잡초로 꽉 차 있다. 내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것을 원망하였으므로 이런 말을 한 듯하다. 일찍이 남쪽으로 순행하여 흥주 부석사에 이르러 벽에 그려진 신라 왕의 초상을 보고 칼을 뽑아 그것을 쳤다. 그 칼 자욱이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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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宋遼 교체기
거란의 통화(統和) 연호를 처음 사용하였다. 거란의 작년 침략 행위를 보복하기 위해 원욱을 송(趙宋)으로 보내 원군을 요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송은 북방 국경이 가까스로 평안해진 마당에 경솔한 군사행동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 후 사신을 후하게 대접만 하고 돌려보냈다. 이 일 이후 송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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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遼金 교체기
정응문과 이후를 금(金)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저는 하찮은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황제폐하의 비상한 위업을 듣고, 이미 오랫동안 존경을 바쳐 왔으니, 넉넉지 못한 예물이나마 충성의 뜻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변변치 못한 공물을 바치는 것이 부끄럽긴 하오나, 크신 은덕으로 받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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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元明 교체기
대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왕조교체는 중국에서의 왕조교체와 맞물려 일어났다. 중국에서 元이 明으로 교체될 때도 한국에서 왕씨고려가 이씨조선으로 교체되었다. 명나라를 치라고 보낸 왕고의 장수 이성계는 군대를 되돌려 왕씨왕조를 전복하고 이씨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두 국호 안을 올려 조선으로 하라는 결정을 받고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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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 동관왕묘(東關王廟)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지었다. 서울 종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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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明淸 교체기
용골대와 마부대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시종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상은 삼공 및 판서·승지 각 5인, 한림·주서 각 1인을 거느리고, 세자는 시강원·익위사의 제관을 거느리고, 삼전도에 따라 나아갔다. 용골대 등이 단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고 상에게 나가기를 청하였다. 상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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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 청태종공덕비(淸太宗功德碑)
청나라의 전승비이며 송덕비이다. 병자호란때 승리한 숭덕제가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세워졌다. 서울 송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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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日米 교체
미국의 한자표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米國이고 또 다른 하나는 美國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는 1920년부터 1940년까지의 동아일보 기사가 올려져 있는데, 사용된 횟수를 보면 米國은 18,105회고 美國은 138회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米國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美國으로 고착되었다. 일본은 여전히 米國으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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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의 김일성은 48차례나 한국 침공을 허락해줄 것을 소련의 스탈린에게 요청했다. 스탈린이 계속 이를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 침공을 허락하지만 자신은 개입하지 않고 중국을 끌어들였다. 스탈린의 우려대로 미국은 개입하였고 김일성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멋모르게 끼어든 중국은 많은 전사자를 내고 미국의 핵폭탄도 맞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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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맥아더 동상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미국의 Douglas MacArthur 장군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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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0-29 김정일
신라통치배들은 령토를 넓히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당나라의 침략세력을 끌어들이는 죄악적인 행동을 감행하였다. 당시 신라통치배들의 대표자였던 김춘추는 당나라통치배들과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데 대한 비밀협약을 맺었다. 그는 당나라통치배들과 신라와 당나라가 련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대동강 이남 지역은 신라가 차지하고 대동강 이북의 넓은 고구려땅은 당나라가 차지할 것으로 흥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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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07-20 카터, 주한미군철수 연기
2월 9일 상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려 “철군을 보류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6월 29일∼7월 1일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박정희와 회담을 하였다. 7월 20일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던 안보담당특별보좌관 브레진스키를 통해 “주한 미군 철수를 81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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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1-28 김재규의 항소이유보충서
"자주국방이 이상일는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독 같은 나라도 집단 안보를 강조하고 있는 터에 우리가 자주국방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우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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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18 광주사태 미국개입설
김씨조선은 미국의 카터 정부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광주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로 결정하고 그 돌격대로 전두환을 내몰았다고 주장해 왔다. 이 미국개입설 때문에 광주, 부산, 대구 그리고 서울의 미문화원이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씨조선도 이 주장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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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02-02 전두환 레이건 회담
레이건은 1981년 1월 21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전두환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앞으로는 없을 것을 다짐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한다. 미국은 북한과 일방적으로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접촉해야 할 경우가 있게 되면 그때는 한미 양국이 반드시 다 같이 나란히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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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서방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군철수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1986년 '강철서신' 이후 생겨난 주사파 사칭은 오히려 미군철수의 깃발을 내렸다. 미군철수가 빠진 주체노선이 있을 수 있나? 애초에 이들은 주체노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옛말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한 풍자의 뜻을 담아 주사파 사칭을 '서방파'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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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김정일
“1992년 초 미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 달라.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요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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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6-09 김대중, 통일 후 미군주둔
그는 연설 초반에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균형자로서 구실을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제를 깔았다. 미국에 '세력균형을 잡아주는 나라'라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동북아와 미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런 맥락에서 동북아에 주둔하고 있는 10만명의 미군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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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미군 위안부 피살사건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2건과 1건 발생하였는데 모두 참혹한 죽음이었다. 지금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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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15 김정일
● 김정일: 1992년 초 미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 달라.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요청했었다. ○ 김대중: 왜 언론 매체를 통해 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 ● 김정일: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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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11 North Agrees
The most important outcome of 615 summit conference was a common understanding that American troops must stay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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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7 박근혜 정부
친중반일 외교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고집하던 박근혜는 2015년 오바마와 회담한 이후 모든 게 변했다.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하고, 한일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합의하였으며,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배치를 수용하였다. 마지막에는 한일군사정보협정까지 체결하였다. 모두 미국이 원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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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22 문재인 정부
"주한미군은 남북간의 평화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군사 균형과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6·15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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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존론(南北共存論)
한국은 과거 35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과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다. 또 한국은 중국 및 월남과 각각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누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과도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인접한 김씨조선과는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조가 중국, 일본 그리고 월남과 다른 점은 한국과 동족국가라는 점이다. 민족주의는 동족국가인 두 나라가 하나로 합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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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Camp Carroll, Camp Casey, Camp Henry, Camp Red Cloud, Camp Walker, Camp Humphr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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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는 시대적 과제
2004년 이라크의 한 길가에서 목이 잘려진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시신은 이라크에서 통역사로 일하던 한국인 김선일씨의 것이었다. 그 전에 한 이슬람 무장단체가 그를 납치하여 한국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자이툰 부대마저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였었다. 한국은 이를 거부하였고 그래서 김선일씨는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이런 죽음을 각오할 만큼 부득이한 일이었을까?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은 이 일로 인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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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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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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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흐름도
사드배치와 미군철수 선택 흐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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