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918 ❽ 王氏高麗의 역사왜곡 > 0900 견훤百濟

상주 출신의 견훤은 서남해안을 지키는 新羅 장수였는데 新羅의 중앙이 혼란한 틈을 타 892년에 무진주를 차지하고 독립하였다. 900년에는 완산주를 순행했다가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자 “新羅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百濟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며 百濟를 세웠다. 옛 백제 지역에서 왕조를 세우는 데에 백제 계승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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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하굴
금하굴
경북 문경 가은에 있다. 견훤의 아버지인 지렁이가 살던 굴이라고 한다.
4725#6942 SIBLINGS CHILDREN COMMENT 6942
 
금하굴 위성지도
이곳은 예전에 상주였다. 삼국유사에는 광주라고 되어 있는데 왜 상주인가?
4725#7584 SIBLINGS CHILDREN COMMENT 7584
 
0712 古事記
도진이명의 딸 활옥의비매는 용모가 단정하였는데, 밤마다 어떤 남자가 찾아와 사랑을 나누었다. ... 그 부모가 "삼실을 바늘에 꿰어 옷에 찔러 두어라"고 하였다. 이튿날 삼실을 따라가 보니 문고리 구멍을 지나 밖으로 나가 미화산 신사에 이르렀다.
4725#6945 SIBLINGS CHILDREN COMMENT 6945
 
1145 三國史記
처음 견훤이 태어나 아기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면 어머니가 그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었는데, 아이를 숲 밑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에서 들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4725#35215 SIBLINGS CHILDREN COMMENT 35215
 
1145 三國史記 견훤 1
견훤(甄萱)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이(李)씨였으나 후에 견(甄)으로 씨를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으며 자기 힘으로 살다가 후에 가문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4725#24632 SIBLINGS CHILDREN COMMENT 24632
 
1145 三國史記 견훤 2
처음 견훤이 태어나 아기 포대기에 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면 어머니가 그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었는데, 아이를 숲 밑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에서 들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4725#26152 SIBLINGS CHILDREN COMMENT 26152
 
1145 三國史記 견훤 5
드디어 무진주(武珍州)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아직 감히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못하였다. 스스로 서명하기를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 지절(持節) 도독전무공등주군사(都督全武公等州軍事) 행전주자사(行全州刺使) 겸 어사중승(御史中丞)상주국(上柱國) 한남군개국공(漢南郡開國公) 식읍이천호(食邑二千戶)라고 하였다.
4725#26153 SIBLINGS CHILDREN COMMENT 26153
 
1145 三國史記 견훤 7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총장 연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 배에 군사 13만을 싣고 바다를 건너게 하였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4725#40687 SIBLINGS CHILDREN COMMENT 40687
 
1145 三國史記 견훤 8
드디어 후백제 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나라 광화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4725#40688 SIBLINGS CHILDREN COMMENT 40688
 
1281 三國遺事 古記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 북촌에 살았다. 딸이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날이 밝자 실을 따라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 인해 아이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4725#33727 SIBLINGS CHILDREN COMMENT 33727
 
1281 三國遺事 古記
▐ 밤마다 찾아오는 낯선 남자에 의해 임신을 한다는 이야기는 일본의 고사기(712)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광주는 견훤이 처음 세력을 일으킨 곳이어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거 같다.
4725#5556 SIBLINGS CHILDREN COMMENT 5556
 
1281 三國遺事 李碑家記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의 시호는 백융부인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의 아들 파진간 선품의 아들 각간 작진이 왕교파리를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요, 넷째 아들이 보개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이며, 딸이 대주도금이다.
4725#5557 SIBLINGS CHILDREN COMMENT 5557
 
@견훤산성 @위성지도
속리산은 조령과 추풍령 사이에 있고 그 속리산의 높은 산과 산 사이로 좁은 계곡이 나 있는데 그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을 통해 상주와 괴산이 연결된다. 견훤 산성은 이 길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이 길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4725#7581 SIBLINGS CHILDREN COMMENT 7581
 
견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견훤은 지금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문경이나 인접한 상주에는 견훤의 탄생설화가 있는 금하굴, 견훤이 무예를 연마하고 명마를 얻었다는 말바위 그리고 견훤이 주둔하며 세력을 키웠다는 견훤산성 등 견훤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였다. 아자개와 견훤은 모두 처음에 이씨였었는데 나중에 견씨로 바꿔 각각 상주견씨와 황간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아자개가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
4725#5555 SIBLINGS CHILDREN COMMENT 5555
 
견훤산성
견훤산성
경북 상주에 있다. 견훤산성이라 불리고 있으나 견훤과 관련되었다는 근거는 없다.
4725#6943 SIBLINGS CHILDREN COMMENT 6943
 
견훤산성 망대
견훤산성 망대
4725#6944 SIBLINGS CHILDREN COMMENT 6944
 
금하굴
금하굴
경북 문경 가은에 있다. 견훤의 아버지인 지렁이가 살던 굴이라고 한다.
4725#7401 SIBLINGS CHILDREN COMMENT 7401
 
황간견씨(黃磵甄氏)
견씨(甄氏)는 중국 중산(中山)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서 한(漢)나라 때 사람인 견풍(甄豊)의 후예(後裔)로 전한다. 우리나라 견씨는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견훤(甄萱)을 시조(始祖)로 하는 황간견씨(黃磵甄氏)와 아자개(阿慈介)를 시조로 하는 상주견씨(尙州甄氏)가 있으며, 그 외에도 남양(南陽), 청양(靑陽), 전주(全州) 등 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4725#24741 SIBLINGS CHILDREN COMMENT 2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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