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출신의 견훤은 서남해안을 지키는 新羅 장수였는데 新羅의 중앙이 혼란한 틈을 타 892년에 무진주를 차지하고 독립하였다. 900년에는 완산주를 순행했다가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자 “新羅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百濟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며 百濟를 세웠다.
옛 백제 지역에서 왕조를 세우는 데에 백제 계승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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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견훤 7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주의 백성들이 환영하고 고마움을 표하였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총장 연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 배에 군사 13만을 싣고 바다를 건너게 하였고, 신라의 김유신이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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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古記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光州) 북촌에 살았다. 딸이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날이 밝자 실을 따라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 인해 아이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4725#3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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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李碑家記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의 시호는 백융부인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의 아들 파진간 선품의 아들 각간 작진이 왕교파리를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요, 넷째 아들이 보개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이며, 딸이 대주도금이다.
4725#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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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견훤은 지금의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문경이나 인접한 상주에는 견훤의 탄생설화가 있는 금하굴, 견훤이 무예를 연마하고 명마를 얻었다는 말바위 그리고 견훤이 주둔하며 세력을 키웠다는 견훤산성 등 견훤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였다. 아자개와 견훤은 모두 처음에 이씨였었는데 나중에 견씨로 바꿔 각각 상주견씨와 황간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아자개가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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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견씨(黃磵甄氏)
견씨(甄氏)는 중국 중산(中山)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서 한(漢)나라 때 사람인 견풍(甄豊)의 후예(後裔)로 전한다.
우리나라 견씨는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견훤(甄萱)을 시조(始祖)로 하는 황간견씨(黃磵甄氏)와 아자개(阿慈介)를 시조로 하는 상주견씨(尙州甄氏)가 있으며, 그 외에도 남양(南陽), 청양(靑陽), 전주(全州) 등 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4725#2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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