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4) 낙랑고려 > 벽화 > 옷, 쓰개, 신, 머리털, ... >

건조한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유목을 하는 사람들과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벼농사를 하며 수시로 무논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신이 같을 수 없다. 가죽신과 짚신은 각각 기마 유목민과 벼농사 농민의 신을 대표한다.
 
조와 쌀의 재배 유적
적색은 조의 재배 유적이고 녹색은 쌀의 재배 유적이다. 대체로 조는 황하가 중심이고 쌀은 장강이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430
 
半島と九州情勢
한반도로 농경민이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다. 전쟁과 재난을 피해 북중국에서 요동을 지나 한반도로 내려오는 화전민이 하나의 갈래고 장강 유역에서 산동 반도나 유구 열도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오는 논농사 주민이 하나의 갈래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신던 신을 그대로 신고 들어왔을 것이다.
11431
 
0289 삼국지 夫餘
在國衣尙白 白布大袂 袍·袴履革鞜 出國則尙繒繡錦罽 大人加狐狸·狖白·黑貂之裘 以金銀飾帽 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외국에 나갈 때에는 비단옷·繡놓은 옷·모직옷을 즐겨 입고, 대인은 그 위에다 여우·삵괭이·원숭이·희거나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갓옷을 입으며, 또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하였다. ※履 신 리, 革 가죽 혁, 鞜 가죽신 탑
11432
 
0289 삼국지 馬韓
其人性彊勇 魁頭露紒 如炅兵 衣布袍 足履革蹻蹋 (마한) 사람들의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다.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 章懷云 魁頭 猶科頭也 謂以髪縈繞 成科結也 紒 音計 장회 태자가 말하길, "괴두는 유과두다. 머리털을 얽고 둘러 묶는 것을 말한다. 紒는 발음이 計다." ※猶 원숭이 유, 髪 머리털 발, 縈 얽힐 영, 繞 두를 요, 蹻 발돋움할 교, 蹋 밟을 답
11434
 
0289¦가죽신
※동일한 가죽신이라 하더라도 유목, 밀농사, 벼농사 등 생활 방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왼쪽으로부터 Scythia 그릇, 소하 가죽신, 고구려 벽화 그리고 이조 가죽신이다. 삼국지에는 부여와 마한 사람들이 가죽신을 신는다고 되어 있지만 이 중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11433
 
0450± 신라의 짚신
11343
 
0450± 신라의 짚신
왼쪽으로부터 기원전에 제작된 Scythia 그릇과 소하 가죽신, 5세기경에 제작된 경주의 토기 그리고 근래 제작된 집신이다. Scythians는 유라시아 초원의 기마 유목민이고 소하인은 사막화되기 전의 건조한 Tarim 분지에서 밀농사를 지었으며 신라인은 무논에 벼농사를 지었다. 가죽은 물에 약하고 벼농사 농민은 수시로 신을 벗고 무논에 들어가 작업을 해야 했다.
11391
 
0500± 가라
11513
 
1637~1800± 중국과 한국
11362
 
1637~1800± 중국과 한국
왼쪽의 두 그림은 각각 중국의 논갈이와 모내기를 그린 그림이고 오른쪽 두 그림은 각각 한국의 논갈이와 모내기를 그린 그림이다. 중국과 한국 모두 수시로 맨발로 무논에 들어가 작업을 해야하는 벼농사 농경민이다. 작업이 비슷하면 그에 맞는 신도 비슷해질 수 있다. 말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기마 유목민과는 근본적으로 신에 대해 필요로 하는 기능이 다르다.
11388
 
草履(ぞうり)
11511
 
草鞋(わらじ)
11512
 

신라시대에는 '선(洗)'이라고 표기하였다. 신은 그 형태상으로 보아 화(靴)와 이(履)로 나눌 수 있다. 화는 북방계통에서 유래된 신으로 이에 신목이 붙어 있는 지금의 장화 같은 것으로 긴 신을 말한다. 이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남방족계통의 신이다.
11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