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東沃沮가 신라에 말 20필을 바친 기록과 25년에 南沃沮의 20가구가 백제로 귀순한 사건은 모두 당시의 정황에 맞지 않는다.
이 두 기록을 32년의 樂浪王 崔理 이야기와 함께 300년 뒤로 물리면 각각 296년과 325년의 이야기가 되어 어느 정도 어색함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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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三國史記 新羅
東沃沮使者來 獻良馬二十匹曰 寡君問南韓有聖人出 故遣臣來享
동옥저의 사신이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며 말하기를, “저희 왕께서 남쪽의 한에서 성인이 나셨다는 소식을 들으셨기에 신으로 하여금 와서 선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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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2✘ 三國史記 高句麗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가 北國 神王의 아들이라며 好童을 데려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 최씨 딸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게 한 뒤 왕에게 낙랑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피리가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혹은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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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6 ❰❰ -0005 「三國誤記」 新羅
東沃沮使者來 獻良馬二十匹曰 寡君問南韓有聖人出 故遣臣來享
동옥저의 사신이 와서 좋은 말 20필을 바치며 말하기를, “저희 왕께서 남쪽의 한에서 성인이 나셨다는 소식을 들으셨기에 신으로 하여금 와서 선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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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2 ❰❰ 0032 三國誤記 高句麗
왕자 好童이 沃沮에 갔다가 樂浪王 崔理를 만났는데 崔理가 北國 神王의 아들이라며 好童을 데려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好童이 돌아가 최씨 딸에게 사람을 보내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뽀개게 한 뒤 왕에게 낙랑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의 군사가 성 밑에 이른 뒤에야 북과 피리가 망가진 것을 알게 된 崔理는 딸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혹은 '낙랑을 멸망시키려고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맞은 뒤 돌려보내 무기를 파괴하게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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沃沮史
沃沮 ❱ 衛滿朝鮮 ❱ 漢 玄菟郡 ❱ 漢 樂浪郡 東部都尉 ❱ 高麗 ❱ 渤海 柵城府 ❱ 金 曷懶路 ❱ 李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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