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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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이 망하기 전에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이 이야기와 연결시켜 볼 수 있으나, 호공이 마한을 방문한 이야기에 붙은 설명과 모순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변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삼국사기는 진나라 말기에 연나라 등지의 유민이 진한으로 온 이야기를 신라의 기원으로 바꾼 데 이어 연나라 등지의 유민도 조선의 유민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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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저자는 海東에 국가가 있은 것은 箕子가 주나라로부터 朝鮮에 봉해진 때부터이며 衛滿의 참칭을 거쳐 한나라의 玄莬와 樂浪이 되었다가 나중에 高麗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新羅가 나온 辰韓에는 秦의 난민들이 와서 섞여 살았으며 百濟는 馬韓의 동북쪽 땅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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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와 新羅의 유래가 각기 다르게 되는 이런 인식은 高麗계승을 내세운 王氏高麗가 통합을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래서 新羅의 뿌리를 秦의 유민에서 朝鮮의 유민으로 교체하여 新羅를 朝鮮의 땅에서 번성했던 高麗와 하나로 묶은 것이 아닐까?
이는 일제가 한일합방을 유지하기 위해 日本과 韓國의 뿌리가 같다는 日鮮同祖論을 내세운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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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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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東史綱目
按 今我人稱梁爲道乙 若露梁津稱露道乙是也 辰韓雖燕人 而後秦統一 故通稱 古人秦辰通用 據左傳辰嬴 亦可傍證
상고하건대 지금 우리 나라 사람이 梁을 일컬어 道乙이라 하니 마치 露梁津을 露道乙로 일컫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辰韓이 비록 燕人이나 후에 秦이 통일하였기 때문에 통칭하였고, 옛사람들이 秦과 辰을 통용하였다. 左傳의 辰嬴을 상고하여도 방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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