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historiography - 國名

❶ 고구려와 사로는 각각 고려와 신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음 이름을 버리고 나중 이름으로 통일한다. ❷ 고려와 백제는 훗날 동일한 이름의 나라가 다시 세워졌는데, 원래의 나라는 그대로 두고 나중의 나라만 접두어를 붙여 구별한다. 궁예고려, 왕씨고려, 견훤백제, ... ❸ 훗날의 나라 이름에 붙이는 접두어는 왕조를 표시하는 말로 한다. 위만조선, 이씨조선, ...
 
Name Dictionary
Names are also vocabulary.
 
고려왕 작위
0520 양서(636)0531 양서(636)0550 북제서(636)0559 북사(659)0580 수서(636)0624 구당서(945)0643 구당서(945)
 
-37 高句麗(高句麗)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高)로써 성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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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십제(十濟), 百濟(百濟)
온조는 한수 남쪽[河南]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그 후 [처음] 올 때 백성(百姓)들이 즐겨 따랐다[百姓樂從]고 하여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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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三國史記(1145) 徐那伐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57년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徐那伐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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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三國史記(1145) 徐耶伐
지금 살펴보면 신라 시조 혁거세는 -57년에 나라를 세웠다. 왕도는 길이가 3천 75보, 넓이는 3천 18보이며, 35리 6부로 되어 있었다. 국호는 徐耶伐이라 하였는데 혹은 斯羅 혹은 斯盧 혹은 新羅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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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5 三國史記(1145) 雞林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알지라 했다. 그가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쳐 국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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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0651 Sassanian Persian Empire
The Sassanid Empire. 이전의 Persian Empire와 구별하기 위해 혈통을 나타내는 Sasan을 앞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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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6+ 三國志(289) 斯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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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三國史記(1145) 新羅
나라 이름을 다시 新羅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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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0 晉書(648) 薛羅
分遣使者徵兵於鮮卑·烏丸·高句麗·百濟及薛羅·休忍等諸國 並不從 ▐ 符秦의 苻洛이 반란을 일으켜 선비, 오환, 고구려, 백제, 설라, 휴인 등의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군사를 모았으나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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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三國史記(1145) 新羅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斯羅라고 부르거나 斯盧라고 부르고 혹은 新羅라고도 말하였습니다. 신들이 생각하건대, 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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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職貢図 新羅→斯羅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 魏時曰新羅宋時曰斯羅其實一也 或屬韓或屬倭 사라국은 본래 동이 진한의 한 소국이다. 조위(220~265) 때에는 신라라 했고 유송(420~479) 때에는 사라라 했는데 같은 나라다. 혹은 백제에 속한다고 하고 혹은 왜국에 속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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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8 남부여(南扶餘)
16년(538) 봄에 서울[都]을 사비(泗沘)<다른 이름은 소부리(所夫里)였다.>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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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6 梁書(636) 新盧→新羅(斯羅)
魏時曰新盧 宋時曰新羅 或曰斯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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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0 百濟(百濟)
(견훤) 백제왕을 자칭하고 관직을 마련하니 이 때는 당나라 광화(光化) 3년이고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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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고려(高麗)
(궁예) 辛酉称髙䴡 신유년에 고려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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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마진(摩震)
(궁예) 천우(天祐) 원년 갑자(904)에 나라를 세워 이름을 마진(摩震)이라고 하고, 연호를 무태(武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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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태봉(泰封)
(궁예) 주량 (朱梁) 건화(乾化) 원년 신미(911)에 성책(聖冊)을 고쳐 수덕만세(水德萬歲) 원년으로 하고, 국호를 고쳐 태봉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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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고려(高麗)
(왕건) 여름 6월 병진일에 태조가 포정전(布政殿)에서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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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 조선(朝鮮)
(이성계)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옛날 기자의 시대에 있어서도 이미 조선이란 칭호가 있었으므로, 이에 아뢰어 진술하여 감히 천자께서 들어주시기를 청했는데, 천자의 대답이 곧 내리시니 특별한 은혜가 더욱 치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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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대한(大韓)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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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1948년에는 남한지역에서 실시된 국제 연합 감시하의 한반도 총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김일성을 수상(후에 주석이 됨.)으로,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 9일 북한 정부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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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神社(こまじんじゃ)
고려가 망한 뒤 일본으로 망명했던 왕자 약광을 기리는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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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신한혁명당 대동단결 선언의열단 조선혁명 선언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
 
¦중복구호의 구별
뒤에 나온 나라가 국호의 원래 주인을 초기이름으로 되돌리거나 접두어를 붙여 밀어내고 그 이름을 차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최초로 사용된 국명이 보존되고 후대에 사용된 국명이 마땅히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또 전후(前後)나 동서남북(東西南北)보다는 왕조의 이름을 접두어로 붙이는 것이 확장성이나 고유성을 고려할 때 보다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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