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1145)는 선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신하들이 회의를 해서 조카를 옹립하려 했으나 閼川이 범람하는 바람에 京北에 사는 그가 건너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閼川이 월성의 북쪽을 동서로 흐르는 北川처럼 들리게 한다.
그런 착각은 삼국유사(1281)에서 나타나서 동국여지승람(1481)을 거쳐 알천제방수개기(1707)로 이어졌다.
그러나 兄山江처럼 북동으로 흐르면 그 동편에 있는 월성에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이 강의 서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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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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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5 三國史記(1145)
及宣徳薨 無子 群臣議後 欲立王之族子周元
선덕왕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자, 여러 신하들이 회의를 한 후에 왕의 집안 조카인 주원을 옹립하고자 하였다.
周元宅於京北二十里 㑹大雨 閼川水漲 周元不得渡
주원의 집은 서울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위치였는데, 마침 큰비가 와서 알천의 물이 넘쳐 주원이 건너 오지 못하였다.
29313#2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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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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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5 三國遺事(1281)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받들어 장차 궁중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家在川北忽川漲不得渡
그의 집은 내의 북쪽에 있었는데 홀연히 냇물이 불어나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왕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 北川神에 제사지내고 나서 川漲이 있었기 때문에 川漲의 川은 北川이 된다. 삼국사기는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閼川水漲이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北川은 閼川의 이칭이 된다.
29313#2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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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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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閼川堤防修改記
閼川西注 邑基東圮
서쪽으로 흐르는 알천 물살에 고을 동편 제방이 무너졌네.
高擁木石 奧自麗氏
나무와 돌로 높은 둑을 쌓았으니 고려 때부터라네.
今又脩改 歲維丁亥
올해 정해년에 다시 수리하여 고치었네.
因勢利導 水由古道
지형 따라 잡은 갈래 예전에 흐르던 대로 물길 터주었네.
磨峨記蹟 垂之千億
이 바위 면에 사실을 적어 영원토록 전하고자 하네.
29313#2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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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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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 瓢巖誌序(1931⁻)
월성 동북쪽에 표암이 있는데 이씨가 나온 곳이다. 그런데 그 사적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상나라와 주나라의 시조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2천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그 사적이 전해오는 것이 겨우 공사의 문적에 실려 있을 뿐이다. 1787년에 이르러 후손 집성이 영천 군수가 되어, 비로소 瓢巖이라는 두 글자를 바위에 새겨서 그 자취를 표시했는데, 월성에 사는 여러 후손들이 이어서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짓고 제단을 쌓아 시조에 대한 제향을 드렸다.
29313#3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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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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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눈바위
경주 시내에서 보면 게의 눈처럼 튀어나온 바위라고해서 이렇게 부른다. 게눈바위가 있는 영마루를 蟹目嶺이라고 하는데, 게눈바위가 있는 고갯마루라는 뜻이다. 우뚝 솟은 게눈바위 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알터를 머리가 큰 뱀이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예전에는 아이를 얻기 위해서 빌던 기자대라고도 불렀으니 오래전부터 기도신단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29313#38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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