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4. 임나사 > 기록 > 0512 4현
 
 0289 삼국지(晉·陳壽)
마한은 咨離牟盧國(자리모로국)·致利鞠國(치리국국)·牟盧卑離國(모로비리국) 등 모두 5십여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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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 왜의 7국 4읍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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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7-03 일본서기(720)
천황이 백제가 고려에게 패배했음을 듣고 구마나리(久麻那利)를 문주왕에게 주어 그 나라를 구원해 일으키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백제국은 비록 거의 망해 창하에 모여 근심하고 있으나, 실로 천황에게 의지하여 다시 그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구마나리는 임나국 하치호리(下哆呼唎)현의 별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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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7-03 국사편찬위원회
구마나리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쫓겨 옮겨간 웅진(熊津)을 말하며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이다. 久麻那利의 古訓은 ‘고무나리(こむなり)’로, ‘고무’는 한국어 '곰'이고 ‘나리’는 고대 한국어 '나리(나루·노리)'로 川·津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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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9 동성왕
 0479-04 일본서기(720)    공주 단지리 고분    공주 단지리 위성지도  
 
 0512-12 일본서기(720)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상치리(上哆唎)·하다리(下多唎)·사타(娑陀)·모루(牟婁)의 4현을 청했다. 치리국수(哆唎國守) 수적신압산이 “이 4현은 백제와 인접해 있고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백제와는) 아침 저녁으로 통하기 쉽고 (어느 나라의) 닭과 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니 지금 백제에게 주어 합쳐서 같은 나라로 만들면 굳게 지키는 계책이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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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2-12 일본서기(720)
이로 말미암아 사신을 바꾸어 칙을 선포하고 내리는 물건과 제지를 붙여서 표에 따라 임나의 4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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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2-12 일본서기(720)
하치호리(下哆呼唎)와 하다리(下多唎)는 하치리(下哆唎)의 오기거나 이칭일 것이다. 별읍이라 한 것으로 보아 공주는 하치리의 중심부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소국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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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9-03 일본서기(720)
백제왕이 하치리국수(下哆唎國守) 수적압산신에게 이르기를 “무릇 조공하는 사자는 늘 도곡을 피하느라 매번 풍파에 고통을 겪습니다. 이 때문에 가지고 가는 물건이 젖어서 모두 상하여 보기 흉합니다. 가라의 다사진을 신들이 조공하는 나루길로 삼기를 청합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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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0-09 일본서기(720)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물부대련미여 등이, “적은 군사로는 쉽게 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백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임나의 상치리(上哆唎)·하치리(下哆唎)·사타(娑陀)·모루(牟婁)의 네 현을 청하였는데, 대반대련금촌이 표에서 청하는 대로 구하는 곳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동안 쌓여 갔으니 가볍게 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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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0-09 일본서기(720)
임나4현이 백제에게 넘어간 사건은 신라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신라가 탄현을 사이에 두고 상치리와 접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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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7 일본서기(720)
이 달 대장군 기남마려숙녜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치리(哆唎)에서 출동하고, 부장군 하변신경부는 거증산으로부터 출동하도록 하여 신라가 임나를 공격한 상황에 대하여 문책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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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7 일본서기(720)
왜(倭)가 신라를 침공하는 경로는 서라벌과 가까운 동해안에 상륙하여 바로 도성을 공격하는 것과 안라와 가까운 남해안에 상륙하여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부장군은 후자의 경로를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장군은 치리에서 출발하여 신라를 공격한 뒤 백제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역시 치리를 금강 유역으로 설정해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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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牟婁)
 0289 삼국지(晉·陳壽)    0391 왜의 7국 4읍 정복    0470 삼국사기(1145)    0486-01 삼국사기(1145)    0486-01 옥천 신라 산성    0500 무주 신라 고분    0512-12 일본서기(720)    0540-09 일본서기(720)    0554 관산성 전투    금산 위성 지도    금산 장대리 고분    솔까역사  

사타(娑陀)
 0391 왜의 7국 4읍 정복    0512 임나4현과 벽중    0512-12 일본서기(720)    0540-09 일본서기(720)    0639 미륵사 석탑 금제사리봉안기    0654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    0660 당평제비(唐平濟碑)    0662-02 삼국사기(1145)    0671-01 일본서기(720)    0671-11 일본서기(720)    0674 일본서기(720)    0691 일본서기(720)  
 
 상치리, 하치리, 사타, 모루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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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금강은 덕유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계룡산을 왼쪽에 끼고 돌아 다시 남쪽으로 흐른다. 동일한 금강 유역이지만 계룡산 동쪽과 서쪽은 문화권이 갈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치리와 하치리를 각각 금강 유역의 상류와 하류 지역으로 설정해 보았다. 이러한 명명법은 낙동강의 상류와 하류에 있는 가라를 각각 상가라와 하가라라 했다거나 섬진강의 상류와 하류에 있는 기문을 각각 상기문과 하기문이라 불렀던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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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사타와 모루는 각각 하치리에 인접한 만경강 유역과 상치리에 인접한 금강 상류로 설정해 보았다. 모루를 이렇게 설정하면 이듬해에 일어난 기문 분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문 분쟁의 대상인 기문과 모루가 인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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