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인은 머리카락이 굵고 곧아서 그대로 기르면 거추장스럽게 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정수리로 모아 묶는 상투가 일찍부터 틀어졌다. 각종 쓰개도 상투를 먼저 틀고 그 위에 씌워졌다.
진시황릉의 토용은 모두 상투를 튼 상태이며 마한이나 왜인에 대한 기록에도 상투를 틀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변한과 신라는 장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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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史記(-91)
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 魋 몽치머리 추 結 맺을 결, 상투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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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倭
男子皆露紒以木緜招頭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으로 머리를 묶는다.
▐ 露紒(露髻 노계)는 쓰개를 하지 않은 민상투를 말하는 듯하다.
1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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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馬韓
其人性彊勇 魁頭露紒 如炅兵 衣布袍 足履革蹻蹋
(마한) 사람들의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다.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
※ 章懷云 魁頭 猶科頭也 謂以髪縈繞 成科結也 紒 音計 장회 태자가 말하길, "괴두는 유과두다. 머리털을 얽고 둘러 묶는 것을 말한다. 紒는 발음이 計다."
※猶 원숭이 유, 髪 머리털 발, 縈 얽힐 영, 繞 두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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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閻立本과 顧德謙의 職貢圖
신라의 사신은 수염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으로 보아 수염에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두발도 마찬가지다.
다만, 삼국지(289)에서 변한은 장발을 했고 진한은 변한과 섞여 있었는데 그 진한에서 신라가 나왔다고 했으므로, 신라 사신이 장발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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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0± Afrasiab murals
왼쪽으로부터 3명은 중앙아인, 4명은 당나라 사신, 4명은 터키 사신 그리고 2명은 고려 사신이다.
당나라 사신은 상투를 틀고 책을 쓴 것으로 보이고 터키 사신은 머리털을 길게 땋았으며 고려 사신은 상투를 틀고 새깃갓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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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0± 장발 문화
왼쪽으로부터 스키타이 사람, 신라 사신 그리고 터키 사신.
중국, 고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모두 상투를 튼 것과 비교된다.
신라는 금관과 무덤 등 유물과 유적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색채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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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 일본으로 간 조선의 외교사절
小童十六人이라고 적혀있어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년이라 아직 수염이 나지 않았고 장가를 가면 상투를 틀기 때문에, 이 소년의 수염 없는 얼굴과 장발을 가지고 전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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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개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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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투
머리카락을 모두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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